교황 율리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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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통치권 회복'''
 
1512년 8월, 교황군은 신성동맹군과 합세하여 프랑스를 이탈리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이후 동맹국들이 만토바에 모여서 향후 이탈리아에서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때 피사 공의회를 개최하였던 피렌체에 대해 응징을 결의하였다. 결의에 따라 [[라몬 데 카르도나|라몬 데 가르도나]]가 이끄는 스페인군이 1512년 8월에8월말에 피렌체를스페인군이 정벌하였고1512년 교황8월에 율리오볼로냐를 2세는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을 교황군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피렌체로 파송하였다. 곧 조반니 추기경의 동생 줄리아노가출발하여 피렌체 공화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이로써 지난 1494년에 프랑스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하며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한뒤 18년만에 다시 통치권을 회복하게[[프라토]](Prato)를 된것이다정벌하였다.<ref>
크리스토퍼 히버트<메디치 가 이야기> 271 페이지, 생각의 나무</ref> 프라토는 수도 피렌체에서 북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도시로, 프라토 함락소식을 접한 피렌체의 메디치 가(家) 지지자들이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거칠어지자 피렌체의 수상과 정부 주요 관료들은 사임을 하고 망명을 떠났다. 교황 율리오 2세는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훗날 교황 레오 10세)을 교황군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피렌체로 파병하였다. 9월 1일, 조반니 추기경은 1,500명의 군인을 이끌고 피렌체에 무혈입성하였다. 이로써 18년만에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의 통치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 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