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율리오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44번째 줄:
 
=== 스위스 근위대 창설 ===
교황으로 즉위한후 1505년에 스위스 용병 200명을 [[로마]]로 보내달라고 스위스 연방에 요청하였다. 1505년 9월, [[카스퍼 폰 시레넨]]이 이끄는 150명의 병사들 가운데 첫 번째 파견대가 스위스를 떠나 다음해 1월 22일에 로마에 입성하였다. 이후 1월 22일은 공식적으로 스위스 근위대 창설 날짜로 지정되었다. 율리오 2세는 나중에 이들 스위스 근위대에게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렸다.
1503년 율리오 2세는 [[스위스 근위대]]를 창설하였다. 이후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을 최측근에서 지키는 유일한 군사력으로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교황 율리오 2세(재위 1503-13)가 즉위후 신변안전에 많은 위협이 있었다. 당시 로마에는 1503년에 사망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출신 가문인 보르자 가문의 추종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데르 6세와 율리오 2세는 추기경 시절때부터 서로 강한 경쟁자였고 알렉산데르 6세의 재임기간 동안에도 서로 적개심을 품을 정도로 다툼이 있었다. 신임 교황 율리오 2세는 즉위직후부터 알렉산데르 6세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여 적폐청산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실제로 알렉산데르 6세는 로마교황 역사상 최악의 교황중에 한명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율리오 2세는 바티칸에서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서 믿을만한 새로운 근위대를 창설을 추진하며 스위스 용병을 고용하게 되었다.
 
=== 보르자 가문에 대한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