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브레 동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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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군이 붕괴되면서 그동안 베네치아가 점령했던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모든 영토는 빼았겼다.<ref>Mallett and Shaw, ''The Italian Wars'', 90.</ref> 루이 12세는 가장 동쪽인 브레시아까지 별다른 저항 없이 베네치아의 영토를 차지했다. 프랑스군에 점령되지 않은 주요 도시들(파도바, 베로나, 비첸차)은 피틸리아노의 철수로 무방비 상태에 놓이며, 베네토에 도착한 막시밀리안 1세의 군대에게 포위되었다. 한편 율리오 2세는 베네치아의 모든 시민들에게 파문을 선언하였고, 로마냐 지역을 침공하였다. 교황은 [[알폰소 1세 데스테|페라라 공작(알폰소 1세 데스테)]]의 도움으로 라벤나를 점령했고, 페라라 공작은 [[폴레시네]]를 차지했다.<ref>Norwich, ''History of Venice'', 401–402. 페라라 공작은 캉브레 동맹에 참여하여 4월 19일에 [[교회의 곤팔로니에르|곤팔로니에르]]로 임명된바 있다.</ref>
 
아냐델로 전투에서 베네치아가 패배하며 세력이 급속히 약해지자 든든한 우방을 잃어버린 피사 공화국은 1509년 6월 피렌체에 항복을 할수 밖에 없었다.<ref>로저 마스터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키아벨리> 233 페이지</ref> 11세기에 이탈리아의 핵심 4개 [[해상공화국]]이였던 피사는 13세기말에 쇠퇴하기 시작하여 1406년부터 피렌체의 영지가 되었다. 1494년에 프랑스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때 피렌체로 부터 독립하였으나 16세기 초부터 다시 시작된 피렌체와의 전쟁에서 더 이상 베네치아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피렌체는 캉브레 동맹전쟁에서 중립을 고수하고 있었다.)
 
==== '''파도바 공성전''' (1509년 9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