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브레 동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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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라 전투의 대패이후 프랑스 동맹은 계속된 패배를 맛보았다. [[헨리 8세]]가 이끄는 잉글랜드군은 [[테루안]]을 포위하였고, [[스퍼스 전투|스퍼스 전투(1513년 8월 16일)]]에서 프랑스 군(지휘관 [[자크 드 라 팔리스]])을 격퇴시키고 [[투르네]]를 점령했다. 페르난도 2세는 재빠르게 나바라 전역을 점령하였고 잉글랜드를 돕기위해 [[기옌]]으로 이동하였다.<ref>Kamen, ''Empire'', 35.</ref> 스코틀랜드는 루이 12세의 요청으로 잉글랜드를 공격했지만;<ref>Guicciardini, ''History of Italy'', 280.</ref> 1513년 9월 9일 [[플로든 전투]]<ref>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북부 노섬벌랜드 주의 브렉스턴을 침공하면서 벌어진 전투이다. 제임스 4세가 직접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에 맞서 서리 백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투입된 병력면에서 이 전투는 두 왕국 사이에 일어난 전투 중 가장 규모가 컸다.</ref>에서 대패하였고 국왕 [[제임스 4세]]가 전사하면서 캉브레 동맹전쟁에서 스코틀랜드의 짧은 참전이 끝이 났다.
 
동맹인 프랑스의 지원을 받지 못한채 남겨진 베네치아군(지휘관 달비아노)은 카르도나가 이끄는 스페인군의 추격으로 인해 베네토로 퇴각하였다. 스페인군은 완강한 베네치아의 저항에 파도바를 점령할 수 없었다. 9월 말에는 베네치아 영토로 깊숙히 들어가 포격을 가했으나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고 수송선을 구하지 못하자 롬바르디아로 퇴각해 버렸다. 베네치아가 스페인을 뒤쫓아가 10월 7일 [[비첸차]] 외각에서 양측이 정면으로 부딪쳤으나 베네치아가 대패하고 말았다.([[라 모타 전투|<small>자세한것은 '라 모타 전투' 참고요망</small>]])<ref>Norwich, ''History of Venice'', 429.</ref> 스페인과 베네치아는 1513년과 1514년 내내 [[프리울리]]에서 소규모 접전을 벌였을뿐 양쪽모두 결정적으로 큰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헨리 8세 역시 영토획득에 큰 진전이 없자 프랑스와 단독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말았다.<ref>Guicciardini, ''History of Italy'', 282.</ref>
 
[[파일:Marignan.jpg|섬네일|1515년, 프랑스-베네치아 동맹군은 [[마리냐노 전투]]에서 신성 동맹에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