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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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대상이 되는 주제에 대해 최근의 주장을 보완하고 이에 따라 기존 서술 일부에 대해 확정적 서술이 아닌 '~주장했다'는 서술로 대체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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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桓檀古記)는 [[이유립]]이 [[1979년]]에
== 개요 ==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에 의해 처음 출간되었다. 저자는 [[계연수]]로 [[1911년]]에 《삼성기 상(上)》, 《삼성기 하(下)》,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의 5가지 책을 엮고 해제를 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제자인 [[이유립]]에게 주고 60년 뒤에 공개하라고 하였다. 이유립은 이 책을 간직하고 있다가 1979년에 출간하였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수록된 각 책들은 다음과 같다.
* 《삼성기》는 [[환웅]]이라 불리는 왕이 다스린 1565년 동안의 [[신시|신시배달국]]과 그 전신이라 하는 3,301년간의 [[환국 (의사 역사학)|환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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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 경위 및 경과 ==
{{참조|계연수|이유립}}
《환단고기》를 전수받았다 주장하는 이유립이 밝히는 출간 경위는 아래와 같으나,
* 《환단고기》〈범례〉에는 [[광무 (연호)|광무]] 15년([[1911년]]으로 추정. 실제 광무 연호는 10년(1907년)까지만 사용) 계연수가 전해지는 사서를 묶어 《환단고기》라는 책명으로 간행하였다고 적혀 있으며, 《환단고기》〈발(跋)〉에는 [[1949년]]에 이유립의 문인인 오형기가 이유립의 부탁을 받아 《환단고기》를 정서(正書)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11년 간행시 30부를 발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출간 사실 및 판본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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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용어 등 후세에 일부 가필되었더라도 내용 전부가 위작된 것은 아니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작했다면 보다 완벽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의도적인 조작은 아니라는 의견<ref>김막순, 〈한국민족의 형성에 관한 연구: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국방대학원, 2000년, 8쪽.</ref> 이다.
*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는 《[[단기고사]]》(檀紀古事)와 《[[단군세기]]》(檀君世紀)의 '[[오성취루]]'의 천문현상 기록을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한 결과 기록보다 1년 전인 기원전 1734년에 기록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했다. '[[오성취루]]'의 천문기록은 당시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측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대에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했을 경우 정답이 될 확률은 0.007퍼센트로 가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이고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의 신빙성도 함께 증명되었다는 의견<ref name="단군세기">{{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78&aid=0000000115|제목=(과학으로 푸는 우리유산) 고조선인은 한국인인가|언어=한국어|이름=이종호(과학저술가)|날짜=2004-05-22|출판사=국정브리핑(네이버)|확인날짜=2012-01-0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81&aid=0000029893|제목=古천문학|언어=한국어|이름=이용원 논설위원|날짜=2005-01-27|출판사=서울신문|확인날짜=2012-01-03}}</ref> 이다. 전 한국천문연구원장 [[박석재]]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2/02/23/201202230500006/201202230500006_1.html|제목=과학역사소설 ‘개천기’ 펴낸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언어=한국어|이름=이억주 과학동아북스 편집장|날짜=2012-03-23|출판사=신동아|확인날짜=2013-02-10}}</ref>
==== 위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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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 성격에 대한 의문 ===
'박광용, 「대종교 관련 문헌에 위작 많다」, 《역사비평》, 1990'에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한다.<br />
* 《환단고기》가 저술되었다는 [[1911년]]은 항일민족투쟁기인데, 범례에서는 "세계 인류가 대등하게 모여서 함께 존재함을 축하하기 위해서"라고 저술하고 있어 [[민족주의]]와 어긋난다.
* [[고려]] [[우왕]] 말기에 기록되었다는 《태백일사》에 [[왜구]]와의 싸움에 대한 언급이 없다.
* 《단군세기》에는 [[소시모리]]가 3도를 거점으로 [[천왕]]을 자칭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일본 신화]]에서 나타나는 [[스사노오노 미코토]]를 연상시키며, [[일선동조론]]에 이용될 소지가 충분하다.</ref> [[민족주의]], 특히 피식민지 상태의 민족에게서 두드러진다고 평가되는 저항적 [[민족주의]]의 특징은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배타적인 민족 구성을
=== 동북공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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