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콜레 1세 데스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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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년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원을 받아, 사망한 그의 이복 형제 보르소를 대신하여, 보르소의 아들 니콜로가 만토바에 있던 틈을 따 그가 공작이 되었다.<ref>{{저널 인용|journal=Medioevo|page=78|title=Il principe umanista|first=Claudia|last=Bizzarri|volume=12|issue=11}}</ref> 페라라에 그가 없는 동안, 니콜로는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였으며, 그와 그의 친척 아초(Azzo)는 1476년 9월 4일 참수형을 당했다. 에르콜레는 1473년에 [[페르디난도 1세 디 나폴리]]의 딸 [[엘레오노라 다라곤]]과 혼인하였다. 나폴리와 동맹을 맺은 에스테 가문은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1482년에 소금 독점권으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였고 [[교황 식스토 4세]]와 동맹을 맺은 [[베네치아 공화국]]과 일명 [[페라라 전쟁]]을 치루었다. 전쟁은 1484년 [[바뇰로 조약]] 체결을 통해 [[폴레시네]]를 내주면서 끝낼 수 있었다. 페라라는 파국이나 교황청에 흡수되는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에르콜레가 병을 얻어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에 인접 국가들로 인해 에스테 가문의 재산이 파괴되는 굴욕을 겪었다.
 
전쟁 이후, 그는 [[이탈리아 전쟁 (1494년-1498년)|1494-98년 이탈리아 전쟁]]에서 중립에 있었고, 남은 그의 재임 기간에 [[교황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하였다. 그는 마지못하여, 그의 아들 알폰소를 주목할만한 토지를 증여해준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딸 [[루크레치아 보르자]]와의 결혼에 동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