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오호 십육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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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前秦 [[315년]]~[[394년]])은 [[오호십육국시대]] 티베트계 저족에저족(氐族)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다. 국호는 '''진'''(秦)이지만, 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일어난 [[서진]](西秦)과 [[후진 (십육국)|후진]](後秦) 등 같은 국명의 나라가 있기때문에 '''전진'''이라 부르며구별하여 구별한다부른다.
 
== 역사 ==
[[간쑤성]](甘肅省) 일대에 거주하던 저족은 수장인 포홍(蒲洪)의 영도를 받아 [[전조 (오호십육국)|전조]](前趙) 및 [[후조]](後趙)의 용병으로 각지를 전전하였다. [[349년]], 후조의 황제 [[석호 (후조)|석호]](石虎)가 죽자 포홍은 자립하여 삼진왕(三秦王)을 칭하고 장안(長安) 일대를 근거로 하였다. 또한 성을 고쳐 부(苻)로 하였다. 이후 왕호를 폐하고 [[동진]](東晉)에 신속하였다. [[350년]]에 부홍이 죽자 아들 [[부건]](苻健)이 뒤를 이었으며 [[351년]]에 동진으로부터 자립하여 천왕(天王) 대선우(大單于)에 오르고 국호를 진(秦)으로 하였다. [[352년]]에는 황제에 즉위하였다. [[354년]]에는 동진의 [[환온]](桓溫)의 북벌군을 격퇴하고 섬서일대에 세력을 확장했다.
저족은 처음엔 [[전조 (십육국)|전조]]의 [[유연 (흉노)|유연]]을 따랐으나 전조가 [[후조]]에게 멸망당하고, 후조도 [[염민]]의 반란에 의해 멸망하자, 저족의 [[부건]]은 [[동진]]에게 복속한다. 그후 동진에서 독립하여 황제을 칭하고 장안을 손아귀에 넣었다. 동진의 [[환온]]에게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격퇴하고 섬서일대에 세력을 확장했다.
 
[[부홍355년]]의 손자이며, 부건의 조카였던뒤를 이어 즉위한 [[부견부생]](苻生)어릴적부터폭정을 명민하고자행하여 박학다재한폐위되었고 인물로써[[357년]] [[부생부견]](苻堅)이 물리치고즉위하였다. 즉위하여부견은 한인재상 [[왕맹]](王猛)등용하여등용하고 내정에 충실하여 국력을 길러길렀으며 [[전연]](前燕), [[전량]](前凉), [[대나라|대]](代)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376년]] 화북을 통일했다통일하였다. [[383년]], 부견은 천하통일을 목표로 100만이라 칭하는 대군을 일으켜 동진 토벌에 나섰다. 그러나 비수(淝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주서]](朱序)의 배신으로 참패하고 말았다.{[[비수의 전투]]} 부견은 동생 [[부융]](苻融)과 [[모용수]](慕容垂)의 호위를 받으며 패주했다.
 
이 전투의 대패로 전진의 국력은 단숨에 약해지고 무력으로 통합되었던 여러 부족들이 독립하여 [[후량 (오호십육국)|후량]](後凉), [[서진]](西秦), [[후진 (십육국)|후진]](後秦), [[북위 (북조)|북위]](北魏), [[서연]](西燕), [[후연]](後燕) 등의 나라를 세웠다. [[385년]] 부견일족은 서진의 [[요장]](姚萇)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으며 서자 [[부비 (전진)|부비]](苻丕)가 진양(晉陽)에서 제위를 이었다. 그러나 [[386년]] 서연의 공격으로 부비도 사망하였다. 이에 일족인 [[부등]](苻登)이 간쑤성의 포우(枹罕)에서 즉위하여 전진의 세력을 다시 일으켰다.
[[383년]] 부견은 천하통일을 목표로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총 숫자 112만이라 불리는 대군을 일으켜 동진토벌에 나섰다. 허나 전진군은 [[비수의 전투]]에서 동진의 양주자사였다가 항복한 한족장군 [[주서]]가 [전진군이 패배했다!]라고 외치며 부견을 배신하였고, 이 혼란과 동진군의 맹공에 대패하고 말았다. 부견은 동생 [[부융]]과 [[모용수]]의 군대의 보호을 받으며 패주했다.
 
부등은 섬서 일대에 흩어져 있는 전진의 잔존 세력들과 제휴하여 후진을 포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387년]]에 본거지를 기습당해 세력이 쇠퇴하였다. 이후 [[394년]]에 후진의 공격을 받아 부등은 살해되고 태자 [[부숭]](苻崇)이 황중(湟中)으로 도망쳐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선비족(鮮卑族) [[걸복부]](乞伏部)의 [[서진 (오호십육국)|서진]](西秦)에게 살해되었고 이로써 전진은 완전히 멸망하였다.
이 전투의 대패로 전진의 국력은 단숨에 약해지고 이 시기를 기준으로 국내의 여러 부족이 독립하여 각자 [[후량 (십육국)|후량]], [[서진]], [[후진 (십육국)|후진]], [[북위 (북조)|북위]], [[서연]], [[후연]]등의 나라를 세웠다. [[385년]] 장안의 부견세력은 괴멸했으나 서자였던 장낙공(長楽公) [[부비 (전진)|부비]]가 진양에서 제위을 이었으나, 다음해 [[386년]] 서연에게 대패해 괴멸했다. 같은 해 일족 [[부등]]이 포우(枹罕)에서 즉위하여 일시적으로 공세에 나섰으나, [[394년]] 후진에게 멸망당했다. 같은해 부견의 아들이었던 [[부숭]]은 황중(湟中)으로 도망쳐 제위에 올랐으나 선비족 [[걸복부]]의 서진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여 전진은 이로써 완전히 멸망했다.
 
== 역대황제일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