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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도 마가다 국의 수도였던 왕사성(王舎城, 라자그리하라고도 불렸던, 오늘날의 비하르 주 라자기르)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란타 장자(迦蘭陀長者)가 소유하고 있던 대나무 정원으로 처음에는 니건자(尼犍子, [[자이나교]])가 소유하고 있었으나, 장자가 불교에 귀의하면서 이곳을 불교의 승원으로 바쳤고, [[빔비사라 왕]](頻婆娑羅王)이 가람을 짓게 하였다.
 
[[당나라|당]](唐)의 승려 [[삼장법사|현장]]은 《[[대당서역기]]》에서 죽림정사 서남쪽으로 5~6리 가면 남북쪽 큰 대나무 숲 속에 커다란 석실이 있다고 언급하고, 이곳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마하가섭 존자가 대아라한 999명과 함께 삼장을 결집했던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이 칠엽굴(Sattapanni)로, 현장의 언급에 따르면 동굴 앞에는 마가다 왕국의 아자타사트루 왕이 경전 결집을 위해 모인 대아라한들을 위해 지어 준 건물의 터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ref>《대당서역기》권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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