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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질의 뒤를 이어 태수가 된 왕구(王球)가 전혀 훌륭한 면모가 없는 노불(路佛)이란 사람을 등용하려고 하자 왕윤은 완강하게 반대했다. 화가 난 왕구는 왕윤을 죽이려 했으나, 이 사실을 안 [[병주]][[자사 (관직)|자사]] [[등성]]이 왕구를 저지하고 왕윤을 별가종사(別駕從事)로 삼았다 이 일로 인해 왕윤의 명성이 높아졌다.
 
[[광화 (후한)|광화]](光和) 7년([[184년]]) 당시 왕윤은 예주자사(豫州刺史)였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던 왕윤은 자신이 무찌른 황건적에게서 [[장양 (후한)|장양]](張讓)이 보낸 편지를 발견하고 조정에 바쳤다. [[후한 영제|영제]](靈帝)는 노여워하였으나 장양이 간곡히 비는 것을 보고 화를 풀어 벌을 내리지 않았다. 앙심을 품은 장양은 얼마 가지 않아 왕윤을 모함하였고, 왕윤은 조정으로 불려와 처형당하게 되었다. 태위(大尉) 양사(楊賜)는 장양에게 치욕을 당하기 전에 자결하는 것을 권했으며, 예주의 부하 중에서도 자결하는데 쓸 독약을 건네 주는 이가 있었다. 왕윤은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그대로 가려 했다. 그러나 대장군 [[하진 (후한)|하진]](何進) 등이 왕윤의 구명을 위해 애쓴 결과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이후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다.
 
== 동탁 주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