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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러시아 제국]]이 건설한 군사 요새가 기원으로, '''아크몰린스크'''({{llang|ru|Акмолинск}})라는 이름이 붙은 이 마을은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의 [[카자흐]] 지배의 중심지가 되었고, [[20세기]] 초 철도의 교차점이 되면서 더욱 발전했다. [[소련]] 초기에는 [[굴라크]]의 수용소가 있었다.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기에 [[카자흐 SSR]] 북부의 미개간지 개척의 중심지로 선정되었다. 소련은 당시 이 곳을 새로운 농업 중심지로 개척하려고 했으며, [[1961년]]에는 시의 명칭을 '처녀지의 도시'라는 뜻의 '''첼리노그라드'''({{llang|ru|Целиноград}})로 바꾸었다. 이후 농업 관련 공업이 발달하고, 농업 관련 연구소가 들어섰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소련에서 떨어져 나오자 옛 이름을 [[카자흐어]]로 재구성한 '''아크몰라'''({{llang|kk|Ақмола}}, {{llang|ru|Акмола}})로 개칭하였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1995년]]에 카자흐스탄의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크몰라로 이전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전 배경에는 알마티가 국경 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지진의 위험이 크다는커서 도시의 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점이 거론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카자흐스탄 북부 지방의 개발에 유리한 점, 카자흐스탄 북부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차단하기에 유리한 점이 거론되었다. 반면 겨울철 기후가 너무 추워서 새로운 수도 건설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정식으로 천도하면서 도시 명칭을 카자흐어로 수도라는 뜻의 '''아스타나'''({{llang|kk|Астана}}, {{llang|ru|Астана}}, {{문화어|아스따나}})로 고쳤다. 카자흐스탄의 새로운 수도가 된 이후에 대규모 도시 계획이 진행되어 대통령궁, 최신 시설의 대규모 정부 청사, 바이테렉 타워, 초현대식 문화 센터 등 각종 공공 건물들의 건축이 이루어졌다. 인구도 빠르게 증가하여, [[1999년]] 28만 명이었으나, [[2007년]]에는 70여만 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