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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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관련 ==
밀산현이라고 불렀던 미산은 일제에 맞선 한국 독립운동의 기지였다기지였던 한흥동이 있었다. 한국에서 이주해간 사람들 수천 명이 모여 벌판을 개간하고 독립군 군량미를 수확했다. [[이범석]]·[[김좌진]] 장군 등이 미산을 거점으로 독립군을 일으켰다. 2009년 미산시 스리와에 항일투쟁유적기념비가 세워졌다.<ref>조백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9/2009101900095.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5 기자수첩 - 쓸쓸했던 '항일(抗日)기념비 제막식'], 조선일보</ref>
 
[[신민회]] 회원들은 밀산현 봉밀산자에 밀산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일제 관헌의 1916년의 첩보에 따르면 이갑이 교장이라는 보고가 있다. 밀산무관학교도 안창호 등 신민회 망명간부들이 1910년에 설립하려다 실패한 것을 그 후 이갑 등이 설립한 것이라고 추정된다.<ref>[http://www.independence.or.kr/media_data/chong_new/e0019/e0019_47.htm] [[독립기념관]]</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