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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극우 ===
한국의 극우는 해방 정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처음 등장했는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되어 활동했던 [[백의사]], [[이범석]]의 [[민족청년단]], [[지청천]]의 [[대동청년단]] 등이 있었다. 하지만 해방 정국에서 남과 북이라는 이념이 다른 독립된 체재가 성립되었고 서로 무력의 수단인 군사력을 갖추었기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국이라는 체제는 극우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역도 성립하는 특이한 관계가 성립한다. 나아가 분단 상황에서 대한민국 내에서 명확한 파시즘적 특성과 무력을 동반하지 않는 우파에 대해 극우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행동은 국가의 한국이라는 공동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동반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이 테러가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한 [[북한]]은 김구와 [[이승만]]을 격렬히 비판하였다.<ref name="비난231">강준만의 한국현대사산책:1940년대편 1권(인물과사상사, 2006) 231</ref> [[북한]]은 김구와 [[이승만]]을 “봉건 잔재세력과 외국 [[팟쇼]]세력과 [[제국주의]] 잔재세력과 [[친일파]]의 삼위일체”이자, “[[이완용]]을 배운 [[조선]]의 [[매국노]]”로 규정짓는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조선공산당]]은 김구의 귀국시 그들의 기관지를 통해 '김구를 민족혁명의 지사', '반제에 일생을 바친 고결한 지사'로 예찬했었지만. 이 테러사건 이후 김구는 [[북한]]에서 불구대천의 원수로 낙인찍히고 말았다.<ref name="비난231"/> 이런 연유로 당시 북한의 출판물에서는 그의 이름으로 '개 구자', '김구'(金狗)로 부르며 매도하였다.<ref name="kuu0531">김삼웅, 《백범평전》 (시대의 창, 2004) 531페이지</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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