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크 다라고 왕자 (14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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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년 8월, 국왕 후안 2세(1405~1454)를 아빌라로 데려간후 자신의 여동생 마리아와 강제로 결혼시켰다.<ref>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40</ref> 소식을 접한 엔리케의 형 후안이 군대를 일으켜 올메도에 도착하자 엔리케는 왕을 데리고 탈라베라로 이동하였다. 11월 29일, 국왕 후안 2세가 [[알바로 데 루나]]와 함께 탈출에 성공하여 몬탈반 성으로 피신하였다. 엔리케가 성을 포위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하였고 날이 갈수록 귀족들이 지지를 철회하자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ref>Vicens Vives, 2003, p. 42-43.</ref> 1423년 반역죄로 체포되어 산티아고 기사단장직을 제외한 모든 직위와 재산을 몰수당한채 모라성에 감금되었다.
 
카스티야 국왕 후안 2세는 자신의 탈출을 도와 쿠데타가 무산되는데 큰 공을 세운 알바로 데 루나를 카스티야의 총사령관(Constable of Castile)으로 임명하였다.<ref> 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47</ref> 이로써 루나는 궁정내 영향력이 큰 인물이 되었다. 엔리케의 형인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5세는 동생의 석방을 위해 외교적 협상노력과 압박을 가하였고 1425년 10월에 엔리케는 석방되었다. 석방이후 반국왕파 귀족연합을 이끌며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한 루나를 궁정에서 추방하는데추방하기 위해 앞장섰다.
 
=== 권력 회복 (142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