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2세 (카스티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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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위와 통치 ==
 
1419년 14세때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후안 2세는 시 짓기, 사냥, 토너먼트 개최등에 몰두할뿐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총신]] [[알바로 데 루나]]는 후안의 두 번째 부인 [[이사벨 데 포르투갈|이사벨]]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정을 장악하여 온갖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아 카스티야 왕국은 병들어 있었다. 1453년 왕비 이사벨은 전처의 아들 엔리케 왕자와 함께 정변을 일으켜 루나 수상을 참수하고<ref> [https://en.wikisource.org/wiki/1911_Encyclop%C3%A6dia_Britannica/Luna,_%C3%81lvaro_de One or more of the preceding sentences incorporates text from a publication now in the public domain: Chisholm, Hugh, ed. (1911). "Luna, Álvaro de". Encyclopædia Britannica.] 17 (11th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23.</ref> 그 일당들을 대거 숙청하였다.<ref>[네이버 지식백과] 이사벨 1세 [Isabel I] -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 (인물세계사, 원재훈)</ref>
=== 권력 투쟁 ===
 
==== 총신 루나의 기용 ====
1419년 3월 7일, 만 14세로 후안 2세가 성인이 되었고 마드리드에서 열린 코르데스(의회)에서 친정이 선포되었으나 실질적인 권력이양은 요원하였다. 후안 2세는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알바로 데 루나를 내세워 사촌형들(후안과 엔리케)과 귀족들을 견제하였다. 알바로 데 루나는 1410년 그의 삼촌이자 톨레도 대주교인 페드로의 소개를 통해 사환(<small>使喚</small>)으로 궁정에 들어왔으나 곧 후안 2세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측근이 되어 갔다. 루나는 후안 2세가 좋아하는 여러분야에 재주가 많았으며 이를 통해 국왕의 마음을 사로잡은후 점차 궁정내에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던 인물이었다.
 
==== 엔리케의 쿠데타 ====
사촌형인 엔리케(1440~1445)가 1420년 7월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의 형인 후안이 나바라의 블랑쉬와 결혼하기 위해 나바라로 떠나면서 카스티야를 비우자 이를 기회로 삼은 것이다.<ref>Vicens Vives, 2003, p. 31.</ref> 엔리케는 토르데시야스에 있는 왕궁으로 쳐들어가서 후안 2세(1405~1454)를 생포하고 그의 형 후안(1398~1479) 왕자를 따르던 귀족들을 모두 제거한 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1420년 8월, 후안 2세(1405~1454)는 엔리케의 강요에 의해 그의 여동생 마리아와 아빌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ref>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40</ref> 물론 2년전에 이미 사촌누이인 마리아와 약혼한 상태이기는 했으나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결혼이 진행되었다. 쿠데타 소식을 접한 엔리케의 형 후안이 군대를 일으켜 올메도에 도착하자 후안 2세는 엔리케에 요구에 의해 탈라베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11월 29일, [[알바로 데 루나|루나]]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여 루나와 함께 몬탈반 성으로 피신하였다.
 
인판테 엔리케(1440~1445)가 성을 포위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하였다. 나날이 인판테 엔리케에 대한 귀족들이 지지가 약해지자 그는 힘을 잃고<ref>Vicens Vives, 2003, p. 42-43.</ref> 쿠데타는 실패로 종결되고 말았다. 1422년 9월 23일 인판테 엔리케(1440~1445)는 군대를 해산하였고,<ref>Vicens Vives, 2003, p. 44-46.</ref> 1423년 6월 12일, 신변보장을 약속받은 상태로 입궐하였으나 이틀후 후안 2세는 그를 반역죄로 체포하고 모라 성에 감금시켰다. 후안 2세는 인판테 엔리케(1440~1445)로 부터 산티아고 기사단장직을 제외한 모든 직위와 재산을 몰수한후 귀족들에게 분배해버렸다.
 
쿠데타가 종결되자 후안 2세는 루나에게 영지를 하사하고 카스티야의 총사령관(Constable of Castile)으로 임명하였는데<ref>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47</ref> 이로써 루나는 정권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탈출을 도와 쿠데타가 무산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판단하여 내린 조치였다. 엔리케의 형인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5세는 동생(인판테 엔리케)의 석방을 위해 외교적 협상노력과 압박을 가하였고 후안 2세는 이에 굴복하여 1425년 10월에 엔리케를 석방할 수 밖에 없었다.<ref>Vicens Vives, 2003, p. 56-57</ref> 석방된 인판테 엔리케(1440~1445)는 반국왕파 귀족연합을 이끌며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한 루나를 궁정에서 몰아내기 위해 다시 권력투쟁에 앞장섰다.
 
==== 루나의 실각과 복귀 ====
귀족연합의 압박으로 1427년 9월 루나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ref>Vicens Vives, 2003, p. 57-63.</ref> 이내 인판테 엔리케(1440~1445)는 정치일선에 복귀하며 이전의 권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귀족연합이 분열양상을 보였고 귀족들의 요청으로 실각한지 5개월만인 1428년 2월에 루나는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로써 인판테 엔리케(1440~1445)와의 권력투쟁은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엔리케와 귀족연합이 카스티야와 레온에 대한 후안 2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루나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자 1428년 6월 국왕 후안 2세는 인판테 엔리케(1440~1445)에게 궁정에서 떠날것을 명령했다.
 
1429년 그의 형이자 아라곤 왕 알폰소 5세(재위 1416~1458)는 엔리케와 도모하여 카스티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ref>Vicens Vives, 2003, p. 66-68.</ref> 아라곤과 나바라 연합군이 자드라케(Jadraque)까지 침공했으나 후안 2세의 왕비 마리아(알폰소 5세의 누이)가 노력한 덕분에 실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듬해 양국간 마자노 조약을 체결하며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으나 인판테 엔리케(1440~1445)는 이일로 인하여 망명길에 올랐다.<ref>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ref>
 
==== 올메도 전투 ====
1437년 카스티야 귀족들이 후안 2세와 루나 재상에 대항하여 무력 봉기를 일으키자 카스티야는 내전에 돌입했다. 1438년 루나의 숙적 인판테 엔리케(1440~1445)도 앨버커키 백작의 자격으로 귀국한후 귀족들 편에 서서 내전에 합류하였다. 엔리케는 2년전인 1435년, 어머니 레오노르가 사망함으로 앨버커키 백작위를 상속받았다. 1445년 5월 19일, 올메도(Olmedo)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 전투에는 아라곤이 반 국왕파 카스티야 귀족들과 연합했으며 인판테 엔리케(1440~1445)도 참전하였다.
 
루나 재상이 이끈 국왕군은 아라곤-귀족연합군은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인판테 엔리케(1440~1445)가 부상을 입고 사망하면서 루나는 일생 최대의 정치적 라이벌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ref>Vicens Vives, 2003, p. 95-137.</ref> 인판테 엔리케(1440~1445)가 사라지자 카스티야 왕국은 완전히 루나가 접수하게 되었다. 엔리케의 죽음으로 카스티야의 최대 조직인 산티아고 기사단장이 공석이 되자 재상 루나를 단장에 임명하였는데 이로인해 루나의 권력이 후안 2세의 힘을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ref name="Britannica">One or more of the preceding sentences incorporates text from a publication now in the public domain: Chisholm, Hugh, ed. (1911). [[wikisource:1911_Encyclopædia_Britannica/Luna,_Álvaro_de|"Luna, Álvaro de". Encyclopædia Britannica. 17 (11th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23.]]</ref><ref name="sdh 129">송동훈 <대항해 시대의 탄생> 시공사p129</ref>
 
== 유대인 정책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