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2세 (카스티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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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재상이 이끈 국왕군은 아라곤-귀족연합군은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인판테 엔리케(1440~1445)가 부상을 입고 사망하면서 루나는 일생 최대의 정치적 라이벌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ref>Vicens Vives, 2003, p. 95-137.</ref> 인판테 엔리케(1440~1445)가 사라지자 카스티야 왕국은 완전히 루나가 접수하게 되었다. 엔리케의 죽음으로 카스티야의 최대 조직인 산티아고 기사단장이 공석이 되자 재상 루나를 단장에 임명하였는데 이로인해 루나의 권력이 후안 2세의 힘을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ref name="Britannica">One or more of the preceding sentences incorporates text from a publication now in the public domain: Chisholm, Hugh, ed. (1911). [[wikisource:1911_Encyclopædia_Britannica/Luna,_Álvaro_de|"Luna, Álvaro de". Encyclopædia Britannica. 17 (11th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23.]]</ref><ref name="sdh 129">송동훈 <대항해 시대의 탄생> 시공사p129</ref>
 
=== 총신 루나의 몰락 ===
 
==== 왕세자 엔리케 ====
1425년 후안 2세의 첫번째 왕비 마리아로 부터 건강한 엔리케 왕세자(훗날 엔리케 4세)가 태어났다. 루나는 왕세자의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통제하에 놓기위해 세고비아에 별도의 궁정을 마련해주고<ref>[다음백과] 엔리케 4세</ref> 왕자의 동료 선발과 교육을 직접 감독하였다. 엔리케의 어린시절은 이미 루나(Luna)가 국왕의 총신으로서 카스티야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의 전횡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아버지 국왕 후안 2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뿐만 아니라 무능하였고 지나칠정도로 루나를 신임하여 모든것을 맡겨버렸기 때문에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였다.<ref name="queen isabel">바이하이진 <여왕의 시대> 미래의 창 2011.5.25 p171</ref>
 
1445년 어머니 마리아(후안 2세의 왕비)가 독살로 의심되는 상황하에서 사망하였다. 숨을 거두기 직전 주모자로 루나를 지목하였으나 사후에 수사등 어떠한 후속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세자 엔리케가 장성하며 루나와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졌으나 루나가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의 측근들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루나의 권력전횡에 부당하였으나 엔리케 왕자 심약했고 담대함도 부족했기에<ref name="queen isabel" />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ref name="queen isabel" />
 
==== 계비 이사벨 ====
후안 2세는 새로운 왕비로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프랑스 출신의 왕녀나 공녀를 원했다. 그러나 재상 루나가 포르투갈과의 동맹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두번째 왕비로는 포르투갈 주앙 1세의 손녀로 19세의 어린 [[이사벨 데 포르투갈|이사벨]]이 간택되었고 1447년에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이사벨 데 포르투갈|이사벨(1428~1496)]]이 입궐하자 루나는 새로운 왕비 역시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고 하였다. 심지어 부부생활에까지 간섭<ref>Brown, Kendall. "Isabel of Portugal (1428–1496)". Encyclopedia.com...Luna had been invaluable to John II, helping him dominate the rebellious Castilian aristocracy. But he also tried to dictate the royal couple's domestic arrangements, and the old king found Isabel entrancing.</ref>하였다.
[[파일:Colecta_para_sepultar_el_cadáver_de_don_Álvaro_de_Luna,_por_Rodríguez_de_Losada.jpg|섬네일|재상 루나의 최후 (1453년)]]
[[이사벨 데 포르투갈|이사벨]]이 왕녀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카스티야의 왕비가 될수 있었던 것은 모두 루나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산물이었지만 도가 넘는 루나의 간섭은 왕비를 불쾌하게 만들었다.<ref name="Britannica2">One or more of the preceding sentences incorporates text from a publication now in the public domain: Chisholm, Hugh, ed. (1911). "Luna, Álvaro de". Encyclopædia Britannica. 17 (11th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23.</ref> 아울러 총신 루나를 위시한 탐욕스러운 귀족들이 득세하여 국정이 혼란스럽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는 상황을 왕비로서 두고보기 어려웠다. 이사벨은 귀족의 힘을 누르고 실추된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주앙 1세의 손녀답게 담대하게 권력투쟁에 나섰다.
 
==== 동맹과 정변 ====
[[이사벨 데 포르투갈|이사벨(1428~1496)]]은 먼저 전처의 자식인 [[엔리케 4세|엔리케(1425~1474)]] 왕세자와 정치적인 동맹을 맺었다.<ref name="queen isabel" /> 재상 루나(1388~1453)를 제거하여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왕권강화라는 공동의 관심사가 있었기에 쉽게 의기투합 할수 있었다. 그러던중 왕실 회계사<ref name="Britannica2" />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루나가 사주한 일이였다.<ref name="Britannica2" /> 국왕 후안 2세는 [[이사벨 데 포르투갈|왕비 이사벨]]의 체포 요구에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1453년 4월 4일에 루나는 부르고스에서 체포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왕비 이사벨과 왕세자 엔리케는 정변<ref>바이하이진 <여왕의 시대> 미래의 창 2011.5.25 p172</ref>을 일으킨후.<ref name="naver2">[네이버 지식백과] 이사벨 1세 [Isabel I] - 통일 스페인의 어머니 (인물세계사, 원재훈)</ref> 루나의 측근들을 대거 숙청하였다.
 
루나는 후안 2세의 전 왕비 아라곤의 마리아(1403~1445)를 독살한 주범이라는 의심 역시 받고 있었다.<ref name="Britannica2" /> 형식적인 재판을 거쳐서 루나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며 1453년 6월 2일,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루나(1390~1453)는 바야돌리드 광장에서 참수되었다.<ref name="Brown, Kendall">[https://www.encyclopedia.com/women/encyclopedias-almanacs-transcripts-and-maps/isabel-portugal-1428-1496 Brown, Kendall. "Isabel of Portugal (1428–1496)". Encyclopedia.com. Retrieved 23 September 2019.]</ref>
 
== 사망 ==
정변은 성공적이였으나 후안 2세(1405~1454)는 어려서부터 깊게 의지하고<ref name="Britannica2" /> 총애하던 신하의 죽음을 슬퍼했고 건강이 크게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1454년 7월 20일에 사망하고 말았다. 왕세자 엔리케가 카스티야 국왕 [[엔리케 4세]]가 되어 즉위하였는데, 비정하게도 옛 정치동맹이었던 계모 이사벨과 그녀의 두 자녀를 왕궁에서 추방하여 아레발로(Arévalo)라는 소도시로 유배를 보냈다.<ref>Brown, Kendall. "Isabel of Portugal (1428–1496)". Encyclopedia.com.....Henry IV, her stepson by John's first wife Maria of Aragon, began his ill-starred reign. As a dowager in her 20s, Isabel needed to protect the interests of her children, yet protocol insisted that she leave the court. With her son and daughter, Isabel took up residence at Arévalo, west of Segovia, where Henry often held court.</ref>
 
지난 1453년 정변때 보여준 계모 이사벨의 탁월한 능력으로 비추어볼때 언제가는 자신의 왕위를 빼앗아 이복 남동생 아폰소에게 물려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이다.<ref>바이하이진 <여왕의 시대> 미래의 창 2011.5.25 p175</ref> 계모 이사벨(1428~1496)은 배신의 충격으로 인해 [[정신장애]]가 생겼는데<ref name="isabella">[https://www.encyclopedia.com/women/encyclopedias-almanacs-transcripts-and-maps/isabel-portugal-1428-1496 Brown, Kendall. "Isabel of Portugal (1428–1496)". Encyclopedia.com. Retrieved 23 September 2019.]</ref> 증상이 점차 악화되어 실성하는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다. 그녀의 딸이자 이복여동생인 이사벨은 1474년 이복 오빠의 뒤를 이어 즉위한후 레콩키스타를 완성하며 16세기 스페인의 전성기를 여는 위대한 여왕이 되었다.
 
== 결혼 ==
 
== 유대인 정책 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