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2세 (카스티야):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63번째 줄:
1425년에 후안 2세의 첫 번째 왕비 마리아는 건강한 엔리케 왕세자(훗날 엔리케 4세)를 낳았다. 루나는 왕세자의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통제하에 놓기 위해 세고비아에 별도의 궁정을 마련해주고<ref>[다음백과] 엔리케 4세</ref> 왕자의 동료 선발과 교육을 직접 감독하였다. 엔리케의 어린 시절은 이미 루나가 국왕의 총신으로서 카스티야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의 전횡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아버지 국왕 후안 2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능하였고 지나칠 정도로 루나를 신임하여 모든 것을 맡겨버렸기 때문에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였다.<ref name="queen isabel">바이하이진 <여왕의 시대> 미래의 창 2011.5.25 p171</ref>
 
1445년 어머니 마리아(후안 2세의 왕비)가 독살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망하였다. 숨을 거두기 직전 주모자로 루나를 지목하였으나 사후에 수사등 어떠한 후속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왕세자 엔리케가 장성하며 루나와 갈등이 갈수록 심해졌으나 루나가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의 측근들이 휘두르는 권력 앞에서는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루나의 권력전횡에권력전횡이 부당하였으나부당했으나 엔리케 왕자왕세자는 심약했고 담대함도 부족했기에<ref name="queen isabel" />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ref name="queen isabel" />
 
==== 계비 이사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