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KFC42(토론)의 26653582판 편집을 되돌림. 존재하지 않는 분류.
북조선에서 북한으로 명칭 변경
태그: 되돌려진 기여 시각 편집
32번째 줄:
== 사건의 발생 ==
[[파일:Incorrect picture of Lt Barrett.jpg|섬네일|사건 당시의 모습.<br/>이 사진에 마크 배럿 중위는 찍혀 있지 않다(배럿 중위로 표시된 사람은 진 비클리(Gene Bickley) 하사이다)]]
문제의 [[미루나무]]는 당시 [[공동경비구역]]에서 25년생 15m 높이의 나무로서 [[대한민국]](이하 남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조선북한) 양측이 상대방을 감시하기 위한 시계확보에 지장을 주고 있었다.
 
[[유엔사령부|유엔군]] 측 [[주한 미군]]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제5관측소에서 제3초소와 비무장지대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조선북한 3개 초소에 둘러싸인 제3초소 부근에 미루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있어 이를 제대로 관측할 수가 없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주한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조지 보니파스({{lang|en|Arthur George Bonifas}}, [[1943년]] [[4월 22일]]생) [[대위]]를 위시하여 소대장 마크 토머스 배럿({{lang|en|Mark Thomas Barrett}}, [[1951년]] [[6월 9일]]생) [[중위]] 등 2명과 [[부사관]]과 [[병사 (군사)|병]]<ref>[[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사병이란 단어 대신 이들을 구별하여 부른다.</ref> 4명, [[대한민국 국군]] [[장교]] 1명과 [[부사관]]과 [[병사 (군사)|병]] 4명 등 11명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유엔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린 [[미루나무]]의 전지작업을 하는 남한 [[노무자]] 5명의 [[작업]]을 [[감독]]·[[경비]]하고 있었다.
50번째 줄:
== 경과 ==
[[파일:DMZ 10.JPG|섬네일|200px|판문점 내 남북 경계]]
폴 버니언 작전 종결 후 북조선은북한은 긴급 수석대표회의를 요청, 주석 직에 있던 [[김일성]]의 '유감성명'을 전달했다. 처음에 미국은 북조선의북한의 유감성명이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다가 24시간 만에 태도를 바꿔 이를 수락하였다. 북조선은북한은 1년 반 동안이나 [[준전시상태]]를 풀지 않았고, 남한도 북조선을북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사건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후 사건 당사자인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남한과 북조선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다. 이후 판문점 내의 공동경비구역에서도 경계가 설정되었으며, 경계 밖 상대 지역에 존재하던 초소는 철거되었으며, [[콘크리트|혼응토]] 단으로 경계를 표시하였다. 사건 10주년인 1986년 8월 18일에는 근처에 있는 캠프 키티호크({{lang|en|Camp Kitty Hawk}})가 보니파스 대위를 기려 [[캠프 보니파스]]로 개칭되었다.
 
== 같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