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단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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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생단원으로 지목된 [[김일성]] ===
한편,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일성]] 또한 반민생단 투쟁 당시 민생단원으로 지목되었다. 동북인민혁명군 제3단 정치위원이었던 김일성은 반민생단 투쟁의 광풍 속에서 민생단원의 의심을 받으며 평대원으로 강등되었고, 1933년 9월 동녕현 전투에 참가하며 민생단원 혐의를 벗겠다며 앞장서서 돌격하기도 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joosungha/seoullife-04072017103301.html|제목=김일성 1차 북만원정의 진실|저자=주성하|날짜=2017-04-07|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04-23}}</ref> 이 때 김일성을 구제해준 것이 동만특위 위원이었던 중국인 왕윤성인데, 그는 김일성이 체포되려는 때 그를 빼돌려 북만주의 동북항일연군 제5군장(軍長) [[저우바오중]](周保中) 부대로 도망치도록 도와주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1/09/0200000000AKR20170109144900014.HTML|제목=[단독]'김일성 평전' 저자 유순호 "김일성 회고록 왜곡 많아"|저자=곽명일|이름=연합뉴스|날짜=2017-01-10|뉴스=|출판사=|확인날짜=2018년 4월 23일}}</ref> 오늘날 북한에서는 이를 저우바오중을 돕기 위한 북만원정이라며 홍보하고 있다. 동녕현 전투 또한 김일성의 지휘로 한 사건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구사일생으로 북만주로 도망친 김일성은 민생단사건이 일단락된 후 동만주로 돌아와 민생단 혐의 때문에 쫓겨난 조선인들로 유격대를 재조직했고, 이들은 북한의 이른바 혁명세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