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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국호: 고구려미천왕때 세운 광개토왕비에서 '백제'를 '백잔'이라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이 백제의 국명에 대한 일종의 정보라고 생각해서 첨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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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eun young(토론)의 27809371판 편집을 되돌림/독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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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호 ==
기록상 백제는 나라 이름을 몇 차례 바꾸었다. [[삼국사기]]에 처음 나오는 백제의 국호는 십제(十濟)이다. 그러다 온조왕(溫祚王)이 형인 비류(沸流)가 다스리던 백성을 합쳐 더 큰 나라를 만들 때 비류의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여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는 설명이 있다. 한편 중국 측의 역사서인 『수서(隋書)』 백제전에는 처음에 백여 호(戶)가 바다를 건너[百家濟海] 남하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백제라 하였다고 씌어 있다. 백제의 국호에 대한 삼국사기와 수서의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가려내기 어렵다.한편 호태왕비(광개토왕비)에는 百殘이라는 誹稱으로 표기하여 추측컨대는 이두식으로 훈독하여 '백재'로 읽었을 것이다. 재앙 殘으로 낮추어 부름으로 당시 고구려와 백제간의 관계가 험악했음을 알 수 있다. <ref>[http://contents.history.go.kr/mobile/ht/view.do?levelId=ht_001_0040_0020 우리역사넷]</ref>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왕 16년, [[538년]]에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며,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바꿨다. 다만 남부여라는 국호가 멸망 때까지 사용되었는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1995년에 발견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에서 “백제창왕(百濟昌王)”이라는 표현이 보이기 때문이다.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했음에도 바로 다음 왕인 창왕, 즉 [[위덕왕]]대에 와서 다시 백제(百濟)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성왕의 의도가 위덕왕대에 부정되고 있었던 상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0946&content_id=rp070309460001&search_left_menu=5 문화콘텐츠닷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