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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keun young (토론 | 기여) 잔글 →국호: 고구려미천왕때 세운 광개토왕비에서 '백제'를 '백잔'이라 표기하였습니다. 이것이 백제의 국명에 대한 일종의 정보라고 생각해서 첨언하였습니다. 태그: 되돌려진 기여 2017 원본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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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호 ==
기록상 백제는 나라 이름을 몇 차례 바꾸었다. [[삼국사기]]에 처음 나오는 백제의 국호는 십제(十濟)이다. 그러다 온조왕(溫祚王)이 형인 비류(沸流)가 다스리던 백성을 합쳐 더 큰 나라를 만들 때 비류의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여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로 고쳤다는 설명이 있다. 한편 중국 측의 역사서인 『수서(隋書)』 백제전에는 처음에 백여 호(戶)가 바다를 건너[百家濟海] 남하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백제라 하였다고 씌어 있다. 백제의 국호에 대한 삼국사기와 수서의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가려내기 어렵다.
한편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왕 16년, [[538년]]에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며,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바꿨다. 다만 남부여라는 국호가 멸망 때까지 사용되었는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1995년에 발견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에서 “백제창왕(百濟昌王)”이라는 표현이 보이기 때문이다.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했음에도 바로 다음 왕인 창왕, 즉 [[위덕왕]]대에 와서 다시 백제(百濟)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성왕의 의도가 위덕왕대에 부정되고 있었던 상황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ref>[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_id=CP_THE004&cp_code=rp0703&index_id=rp07030946&content_id=rp070309460001&search_left_menu=5 문화콘텐츠닷컴]</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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