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리즈카 투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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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닿은 항공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개항을 서두른 사토 내각은 공항 계획 자체에 대한 교섭 행위에 응하지 않은 채 2주일 후인 7월 4일 "신도쿄 국제 공항의 위치 및 규모에 대하여"{{refnest|group=주해|이 때 각의 내용은 "(1) 신도쿄 국제공항의 위치는 지바현 나리타시 산리즈카초를 중심으로 하는 지구로 한다. (2) 신도쿄 국제공항의 부지 면적은 1,060 헥타르 정도로 한다." 이다.<ref name="koudan167168">[[#新東京国際空港公団|新東京国際空港公団(1987年)]]167-168頁。</ref>}}를 각의 결정하였다. 이 때 결정된 내용은 2017년까지 나리타 국제공항의 기본 계획으로 이어졌다.{{refnest|group=주해|다만 횡풍용 활주로는 "항공기의 비행 성능이 매우 진보하였고 나리타 공항에서 횡풍을 포함한 강풍으로 타 공항으로 우회한 항공편의 비율은 과거 10년간 0.03%로 매우 드물므로 (중략) 그 필요성은 낮아지고 있다"라면서 2016년 나리타공항주식회사가 사실상 건설을 취소하였다.<ref>{{Cite web|url=https://www.narita-kinoukyouka.jp/news/160927.html|title=成田空港の更なる機能強化に関する調査報告について(その3)|accessdate=2017-08-15|date=2016-09-27|publisher=成田国際空港株式会社}}</ref>}} 다만 2018년 3월 14일 4자협의회에서 최종 협의한 기능강화방안은 이 기본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다.<ref>{{Cite web|url=https://www.narita-kinoukyouka.jp/news/180313.html|title=2018年3月13日に四者協議会が開催されました。|accessdate=2018-03-14|date=2018-03-13|publisher=成田国際空港株式会社}}</ref>
 
새 공항 계획은 운수성이 "21세기에도 견딜 수 있다"라며 자화자찬했던 도미사토 안보다는 대폭 축소되었지만<ref name=":19" /> 그래도 공항 건설 부지는 나리타시-시바야마정-[[다이에이정 (지바현)|다이에이정]]-[[다코정]]에 걸친 1,065 헥타르의 광대한 크기로 고료목장 등 국공유지 면적은 공항 계획지의 4할(국유지 243 ha, 공유지 152 ha)도 되지 않아 이곳에서도 670 ha에 달하는 325가구의 사유지의 수용이 문제가 되었으며 토지 협상 당사자도 천여 명이 넘었다.<ref name="yakuwari136138"/>
 
그러나 이때까지도 일본 정부는 공항 건설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며 어디까지나 "5년 안에 완공시킬 프로젝트 팀"으로 각 방면에서 차출해 온 인원으로 신도쿄국제공항공단을 창설하였다.{{refnest|group=주해|[[탄환열차]] 계획에서 얻은 용지를 활용한 [[도카이도 신칸센]]은 착공 5년만에 완공하였다.<ref>{{Cite web|url=https://trafficnews.jp/post/36162|title=新幹線を悩ませる財源問題 なぜ東海道は5年で完成できたのか|accessdate=2017-12-15|author=恵知仁|date=2014-09-26|publisher=乗り物ニュース}}</ref>}}<ref name=":19" /><ref name="tokumei47">[[#前田伸夫|前田伸夫(2005)]]47頁。</ref> 이후 일률적으로 정해진 보상액 등의 제약이나 격렬한 반대 속에서 공항공단 직원들은 필사적으로 용지 매수 교섭을 하였으나 부처에서 파견된 직원들 중에서는 거만한 태도로 소유주를 대해 불만을 사게 만든 사람들도 있었고, "민간 업자들에게 맡겼으면 (용지 취득은)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라고 돌아본 공항공단 직원들도 있었다.{{refnest|group=주해|공항공단의 권한은 이사가 "공단은 공항 부지에서 나오는 순간 개인보다 약하다"라고 한탄할 정도로 신도쿄국제공항공단법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한 운수성 관료 중에서는 공항공단을 애물단지로 떠넘기기 위한 방파제라고 서슴없이 대하고 공항공단 직원들에게 대놓고 "너희들은 돌멩이들이야. 현장에서 잘해주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ref>[[#佐藤文生1|佐藤文生(1978年)]]176-177頁。</ref><ref>[[#前田伸夫|前田伸夫(2005)]]64-65頁。</ref>}}{{refnest|group=주해|나리타 공항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운수성 관료인 [[마루이 간이치]]는 2년 정도면 자리를 옮겨버리는 관료로써는 대형 공항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며 신도쿄 국제공항 건설에는 공단 방식을 채택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모체가 20명 정도면 전체는 아마추어 집단과 같았다"라며 나리타 공항의 공단화도 별 효과가 없었음을 인정하였다.<ref>{{Cite web|url=https://ndlonline.ndl.go.jp/#!/detail/R300000003-I2889221-00|title=空港ができるまで|work=Green port report|accessdate=2019-03-16|publisher=国立国会図書館|author=丸居幹一|editor=新東京国際空港公団広報部}}</ref>}}<ref name="story9096">[[#大和田|大和田武士 鹿野幹夫(2010年)]][2010年]90-96頁。</ref>
 
1966년 12월 12일 운수성이 발표한 기본계획에서는 1971년 봄까지 활주로 1개와 서쪽 시설 절반(1기 지구)를 개항하기로 하며(공사는 1970년 중으로 완공), 나머지 시설(2기 지구)는 1973년 말까지 개항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ref>[[#原口和久1|原口和久(2000年)]]254-255頁。</ref>
 
== 개항 이전 분쟁 전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