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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니즘 선언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1992년에는 [[후소샤]]의 종합 일간지 《SPA!》에 만화 《고마니즘 선언》({{llang|ja|ゴーマニズム宣言}}, [[일본어]]로 "오만"(傲慢)을 뜻하는 '고만'({{llang|ja|ごうまん}})과 "주의, 주장"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이즘'(-ism)의 합성어)을 연재했다. 사회 문제와 정치 문제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코바야시 요시노리가 이전까지의 작품 스타일을 180도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주장 ==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면서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긍정론과 [[반미주의]]를 분명히 내세웠다. 또한 대동아 전쟁은 자위 전쟁이며 일본은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백인에 의한 식민지 체제에 전면적으로 싸움을 건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표명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대해 "나는 공(公)을 지키는 것이지 권력은 지키지 않는다. 권력을 지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다. 나는 [[자유민주당 (일본)|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야당이 정권을 잡든 공에서 어긋난다면 비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해서는 현재의 체제는 전후 체제임을 지적하면서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로부터 벗어난다면 권력과 공이 겹치므로 지지해도 좋지만 실제로는 전후 체제의 보강이 아닐까하고 판단한다. 전후 체제는 '공'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일본의 황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 여계 천황을 용인하고 남계 유지론자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구황족]]의 황적 취득론에 반대했다. 남계 유지론자·지지자에 대해서는 '남계 절대주의자', '남계 고집주의자'라고 묘사하면서 "황실론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대미 종속 사상, 친미 보수에 대해 "친미주의자의 개"라고 조롱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에 대해 "나는 미국에 아첨한 자학사관에 화가 났다. 나는 미국의 개로 전락한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더라도 영령을 우롱하는 행동이라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고 발언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개헌론자이면서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대해서는 100% 믿지 않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안보법제는 100%이다. 입헌주의는 지켜져야 한다."라고 밝히면서 미일 안전 보장 조약([[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을 강화하는 평화안전법제는 '종미법안'(미국에 종속시키는 법안)이라는 관점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평화안전법제(안보법제) 호칭에 대해 "'전쟁법안'은 낙인 찍기라고 하지만 입에 발린 말로도 평화안전법제라고 부를 수 없다. 일본이 동맹국의 전쟁 후방 지원을 통해 무기, 탄약, 인력을 공급하는 병참 역할을 한다면 완전히 전쟁법안이다. 야당은 당당하게 '전쟁법안'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종종 "[[넷 우익]]의 산파"라고 지적받지만 정작 본인은 넷 우익을 무시했으며 "넷 우익은 전쟁론의 부작용이다. 이웃 나라의 욕설을 통해 사진을 비대하고 거대하게 만든 일본인들에게는 미의식의 조각도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후지TV 항의 데모에 대해서는 "넷 우익은 자신들이 강경한 발언을 하면 '보수',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연간 수입이 200만 엔 이하의 하층민이라는데 그러면 되는 건가?", "자신의 입장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고 그 점에 대해 확실히 화낼 정도로 말하고 싶어진다."라고 비난했다. 또한 2012년 12월 27일에 발행된 조간 《아사히 신문》에서 자신의 작품인 《왕괴짜 돈만이》를 사용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신랄한 풍자 삽화와 함께 "아베 신조 총리와 이른바 '넷 우익'은 공생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일본의 학생들이 아베 신조 내각이 추진한 [[특정 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에 항의하기 위하여 조직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비상 행동(SEALDs)에 대해 "실즈라고 하는 젊은이에게 호감"이라고 하는 글을 블로그에 게재하면서 오쿠다 아키(奥田 愛基)와도 회담을 벌였지만 "멋진 데모? 민주주의란 뭐냐? 빌어먹을 놈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모기 겐이치로(茂木 健一郞)와의 대담 도중에는 "9조 수호라고 말하는 순간 미일 안전 보장 조약 찬성과 같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모순이 발생하고 만다. SEALDs에 있는 아이들은 그런 것을 더 공부하면 좋겠다."라고 발언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과거에 일본 영주권을 보유한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에 찬성했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사재기를 환영하는 자세에 대해 "외국인 관광객이 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좋은 것일까? 관광객들의 [[바쿠가이]] 따위를 믿고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 고식(姑息)일 뿐이다. 요즘은 우리 동네 근처까지 중국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지루하다. 누구나 배외주의([[토착주의]])라고 생각할까, 휴머니스트([[인문주의|인문주의자]])인 척하고 장사꾼도 아닌 주제에 바쿠가이가 반갑다며 환영하는 척하는데 진심인가? 특히 중국인은 눈에 거슬린다."고 비판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스기타 미오(杉田水脈)가 [[LGBT]]([[성소수자]])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 "아이를 낳지 않아서 생산성이 없다면 아베 신조 총리도 생산성이 없는 것이다. 스기타 미오는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당신은 생산성이 없다고 직접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스기타 미오는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몸이면서도 정치적인 목표가 차별 밖에 없는 비생산적인 국회의원이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LGBT에 대해서는 "동성애는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인 뇌의 문제이며 본인의 의식으로는 어쩔 수 없다.", "생물학적으로는 전혀 어쩔 수 없는 선천적인 뇌 안의 문제이며 그것을 차별하거나 편견을 갖거나 그 사람들이 보통적으로 품는 감정을 부도덕하다고 말할 수 없다.", "LGBT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은 안 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1930년대 말기와 태평양 전쟁 시기에 국민학교에 재학한 학생으로서 군국주의 교육을 받았던 세대를 "소국민 세대"(少國民 世代)라고 부른다. 또한 쇼와 한 자리수 세대, 불탄 자리 세대에 대해서도 소국민 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영혼]], [[초능력]], UFO([[미확인비행체]])와 같은 [[오컬트]]에 대해 "자신의 눈으로 본 것 밖에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하기 보다는 과학을 사용해서 이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컬트 연구가로 유명해진 츠노다 지로에 대해서는 "본업인 만화가 전혀 팔리지 않게 되었으니까 지금 하고 있는 오컬트는 거의 개그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공격했고 오컬트를 풍자한 《우시로의 나카오카군》({{llang|ja|うしろの中岡くん}}, 츠노다 지로의 만화 작품 《우시로의 햐쿠타로》({{llang|ja|うしろの百太郎}})와 일본의 심령 사진 감정가인 나카오카 도시야(中岡俊哉)의 합성어)을 발표했다. 이러한 반오컬트 사상 때문에 과거에는 일본의 물리학자인 오쓰키 요시히코(大槻義彦) 교수의 팬이라고 밝혔지만 나중에 "오쓰키 교수도 회답을 내지 않은 것이 결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고마니즘 선언》에서 자신이 [[밀교 (불교)|밀교]] 사원에 머물렀을 때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결말을 언급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고마니즘 선언 시바라쿠 1》({{llang|ja|ゴー宣・暫1}}) 제3막 제2장 〈북오프는 문화 파괴다!〉 에서 새로 보이는 "헌 책"을 너무 일찍 진열해서 신간 도서 판매량과 제작자의 보수가 줄어들고 있다며 "만화가들은 원고료만으로는 확실히 적자이다! 단행본이 팔려야 월급을 주고 경비를 내고 수익이 겨우 난다!"(143쪽)면서 일본의 만화 산업을 이룬 시스템을 파괴한다고 비판했고 "물건에는 적정 가격이라는 것이 있다!"(146쪽)라고 주장했다. 또한 재판매 제도, 위탁 제도를 옹호하기도 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가 나카자와 신이치와 함께 후쿠오카에서 강연을 진행하던 도중에 나카자와 신이치가 [[사카모토 쓰쓰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청중들에게 "[[창가학회]]를 시작으로 하는 종교 단체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어떤 종교도 [[옴진리교]]의 소행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조직에 의해 [[하치조섬]]에서 끌려가서 묻혔다."라고 발언했으나 강연이 끝난 이후에 신문 기자가 그 일에 대해 묻자 "거짓말이 확실하다."고 발언했다. 또한 "자기의 입장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무슨 말이든 다 해버린다. 저 사람은 우에키 히토시(植木 等)이다. 저 정도의 상태가 좋으면 용서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라고 발언했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저출산 대책에 관한 측면에서 "사실혼이야말로 일본의 전통이다."라면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일본 최고재판소가 부부동성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나는 이러한 헌법 판단에 별로 이의가 없다. 결혼 이전의 "성씨"(姓氏)가 편하면 통칭을 사용하면 된다."라고 밝혔다.
* 코바야시 요시노리는 '[[야마오 시오리]]를 총리로 하는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고 자처했다. 야마오 시오리가 불륜 의혹으로 인해 [[민진당 (일본)|민진당]]을 탈당한 이후에는 민진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야마오 시오리의 탈당 기자 회견을 높이 평가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