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커스터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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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곤트와 그의 [[정부 (사람)|정부]] [[캐서린 스윈포드]]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의 후예인 [[보퍼트 가문|보퍼트(Beaufort) 백작 가문]]은 랭커스터 왕가의 가장 열렬한 지지세력 중 하나였다. 존과 스윈포드가 둘 사이에서 첫 아이가 태어난지 근 25년이 지난 [[1396년]]에 결혼했을 때,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황 칙서를 통해 그들의 자식들을 적출로 인정해줬다. 이 문서는 이듬해인 [[1397년]]에 [[리처드 2세]]의 칙령으로 반포되었으나, 보퍼트 가문의 정통성은 여론마저 찬반으로 나뉘면서 늘 불안정했다.
 
랭커스터 가문이 종말을 고하자,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헨리 튜더]]가 망명지인 브르타뉴에서 자신이 어머니인 [[마거릿 보퍼트]]의 혈통이 존 곤트에 이어져 있음으로 왕위계승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485년]] 헨리는 [[리처드 3세]]의 평판이 땅에 떨어진 기회를 틈타 정변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헨리 7세로 등극했다. 그는 랭커스터 가문의 부계 혈족이 아니었으므로 그로부터는 랭커스터 왕가가 아닌 [[튜더 왕가]]가 된다. 헨리 7세는 자신들 후손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 요크]]와 결혼하여 요크 왕가의 상속권마저 획득함으로써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 양쪽의 상속권이 그에게 하나로 합해지게 되었다.
헨리는 [[리처드 3세]]의 평판이 땅에 떨어진 기회를 틈타 정변을 일으켜 승리함으로써 헨리 7세로 등극했다. 그는 랭커스터 가문의 부계 혈족이 아니었으므로 그로부터는 랭커스터 왕가가 아닌 [[튜더 왕가]]가 된다. 헨리 7세는 자신들 후손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에드워드 4세]]의 딸 [[엘리자베스 요크]]와 결혼하여 요크 왕가의 상속권마저 획득함으로써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 양쪽의 상속권이 그에게 하나로 합해지게 되었다.
 
==역대 공작과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