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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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진(秦)의 장사를 지내 진이 [[진승]]과 [[오광 (진)|오광]]이 한 봉기를 진압하게 파견한 [[장한]]을 따라 각지를 전전했다. 장한이 [[항우]]에게 수차 패하자 [[진 이세황제]]는 장한을 여러 번 꾸짖었고 장한은 두려워서 사마흔을 함양으로 보내 원병을 청했으나 사마흔은 승상 [[조고]]를 만나지 못하고 두려워해 달아나 조고의 추격을 뿌리쳐 장한에게 돌아가 항우에게 항복하라고 권했다. 항우는 장한을 옹왕으로 봉하고 사마흔은 진군의 상장군으로 삼았다. 항우가 항복한 진군을 몰살할 때에 장한, [[동예 (진나라)|동예]]와 함께 살아남았다. 옛날에 항량을 살려줬고 장한을 항복하게 권한 사정이 항우에게 공적으로 인정되어 항우가 제후들을 분봉할 때에 [[관중 (지명)|관중]] 지방을 장한, 동예와 함께 나누어 받아 새왕으로 봉해졌다. 새나라의 봉토는 구 진의 함양 이동에서 [[황하]]까지 미쳤으며, 서울은 약양(櫟陽)에 두었다.<ref name="s13"/><ref name="s31">[[사마천]]: 《[[사기 (역사서)|사기]]》 권7 항우본기제7 {{위키문헌언어-줄|zh|史記/卷007|사기 권7 항우본기}}</ref>
한왕 원년([[기원전 206년]]), 한왕 [[유방]]이 관중으로 쳐들어왔다. 한왕의 장수 [[한신 (회음후)|한신]]의 공격으로 옹왕 장한이 폐구성에 갇히고 옹의 거의 모든 판도가 한에
[[기원전 205년]], [[팽성 대전]]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격파되자 적왕 동예와 함께 항우에게 항복했다. 한왕 4년([[기원전 203년]]), 항우가 해춘후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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