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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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왕 원년([[기원전 206년]]), 한왕 [[유방]]이 관중으로 쳐들어왔다. 한왕의 장수 [[한신 (회음후)|한신]]의 공격으로 옹왕 장한이 폐구성에 갇히고 옹의 거의 모든 판도가 한에 넘어가면서, [[음력 8월|8월]]에 자신도 한나라 장수 [[관영 (전한)|관영]]의 공격을 받아 약양성이 함락되어 유방에게 투항했다. 이달에 적왕 [[동예 (진나라)|동예]]도 마찬가지로 한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마흔처럼 투항했다. 유방은 새나라를 폐하고 옛 새나라 판도에 후에 [[경조윤]]의 관할 구역이 되는 위남군과 후에 [[좌풍익]]의 관할 구역이 되는 하상군을 설치해 한군으로 편입했다.<ref name="s13">[[반고]]: 《[[한서]]》 권13 이성제후왕표 {{위키문헌언어-줄|zh|漢書/卷013|한서 권13 이성제후왕표}}</ref><ref>사마천: 《사기》 권95 번역등관열전 중 관영{{위키문헌언어-줄|zh|史記/卷095|사기 권95 번역등관열전}}</ref>
 
[[기원전 205년]], [[팽성 대전]]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격파되자 적왕 동예와 함께 항우에게 항복했다. 한왕 4년 10월([[기원전 204년]])<ref>이 당시의 [[전욱력]]으로는 음력 10월이 한 해의 시작이어서, 한왕 4년은 기원전 204년 음력 10월-기원전 203년 음력 9월이다. 그러므로 한왕 4년 10월은 기원전 204년에 속한다.</ref>, 항우가 해춘후·대사마 조구에게 성고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팽월]]을 치러 출진했는데 한 측이 한 도발에 넘어간 조구가 출진해 사수를 건너다가 한군에게 공격받아 참패해 자결할 때 새왕 흔도 장사 예(翳)와 함께 자결했다. 11월, 유방이 부상을 치료하려 관중으로 돌아가면서, 한에서는 사마흔의 머리를 약양의 저자에[[시장 (장소)|저자]]에 [[효시|효수]]했다. 약양은 옛 사마흔의 나라 새나라의 서울이자 또 당시 한나라의 서울이었다.<ref name="h1">반고: 《[[한서]]》 권1상 고제본기상 {{위키문헌언어-줄|zh|漢書/卷001上|사기 권1상 고제본기상}}</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