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라브로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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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라브로프는 사회 혁명을 위한 인민의 교육과 준비, 이를 위한 선전 활동의 필요를 주창했다. 라브로프는 알렉산드르 게르첸이 발행했던 《종》을 계승한 잡지를 출간했고 처음에는 유럽의 사회주의 사상을 러시아에 적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에 망명해 있던 젊은 세대의 러시아인들을 만나면서 보다 급진적인 행동을 요구받게 된다.
 
라브로프는 자신의 저서인 《역사 서한》을 통해 사회학에서 주관적 방법을 주장했다. 즉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개인', 굳건한 의지를 가진 '영웅'을 국민 대중에 선행하는 자로 제시하면서 역사에서 [[인텔리겐치아]](지식인)의 역할이야말로 러시아에서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는 인민주의 운동이 1870년대 말에는 '인민 속으로 가기'를 거부하고 테러리즘으로 방침을 전환한 사실과 호응한다.
 
라브로프는 특권층의 문화는 노동하는 계급의 희생으로 가능했던 그 부채는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문화 자체에 대한 적의는 아니지만 문화라는 것이 죄인가, 아닌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고 있다. 인민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문화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라브로프의 입장은 [[비사리온 벨린스키]],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레프 톨스토이]]를 비롯한 여러 인텔리겐치아들의 사상과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