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요시 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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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노]](観応) 원년/[[쇼헤이]](正平) 5년([[1350년]]), [[간노의 소란]](観応の擾乱)이라 불리는 막부 내분으로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와 그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足利直義)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고, 다다요시의 양자(이자 다카우지의 서자)였던 [[아시카가 다다후유]](足利直冬)가 규슈로 보내졌다. [[지쿠젠 국|지쿠젠]](筑前) [[다자이후]](大宰府)의 [[쇼니 요리히사]](少弐頼尚)가 이를 지원하여 규슈는 막부와 다다후유, 남조 세력이 정립하는 형세가 되었다. 그러나 [[분카]](文和) 원년/쇼헤이 7년([[1352년]]) 유폐되어 있던 다다요시가 죽고(다카우지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다후유는 주고쿠(中国)로 돌아간다. 이를 계기로 잇시키 노리우지는 쇼니 요리히사를 공격했지만 요리히사의 지원요청을 받은 기쿠치 다케미쓰가 다자이후 근교에서 벌어진 하리즈리하라 전투(針摺原の戦い)에서 잇시키 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다. 이어 가네요시 친왕은 기쿠치 ・ 쇼니 군세를 거느리고 [[분고 국|분고]](豊後)의 오토모 우지야스(大友氏泰)를 쳐부수고 잇시키 노리우지를 규슈에서 몰아낸다.
 
그 뒤 쇼니 요리히사가 막부편으로 돌아서자 기쿠치 다케미쓰, 아카보시 다케누키(赤星武貫), 우쓰노미야 사다히사(宇都宮貞久), 구사노 나가유키(草野永幸), 니시무다 사누키노카미(西牟田讃岐守) 등의 남조측은 [[겐분]](延文) 4년/쇼헤이 14년([[1359년]])에 [[지쿠고 강 전투]](筑後川の戦い, 오오하라오오바루 전투大保原の戦い)에서 이를 격파하고, [[고안 (1361년)|고안]](康安) 원년/쇼헤이 16년([[1361년]]) 규슈의 거점이었던 다자이후를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일본 [[후쿠오카 현]] [[구루메 시]]에 위치한 미야노진 신사(宮の陣神社)는 지쿠고 강 전투 당시 가네요시 친왕이 진을 쳤던 부지에 세워진 신사로 전하고 있으며, 신사 경내에는 친왕이 아미타불상 한 구와 함께 심어 모셨다고 전하는 매화나무가 남아 있다. 현지에서는 쇼군 매화(将軍梅)라고 불리고 있는 이 나무는 수령 600년 이상이며, 구루메 시에서 가장 큰 매화 나무로 꼽히는데, 다른 매화가 2월 하순에 만개하는 것과는 달리 쇼군 매화는 3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만개한다.<ref>[https://welcome-kurume.com/spots/detail/a099c0ab-c3cc-42ab-bd54-03c0b377b007 久留米の観光スポット(일본어)]</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