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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고황후가 죽자, 형 유장과 유양이 사람을 보내며 모의하여, 유양은 [[제 (전한)|제나라]]에서 서쪽으로 출병하고 유장은 유흥거와 함께 내응해 여씨들을 죽이고 유양을 황제로 세우기로 했다.<ref name="s52"/> 결국 [[진평]]·[[주발]] 등과 협력해 유장이 [[여산 (전한)|여산]]을 죽임으로써 여씨들을 주멸할 수 있었다. 대신들은 [[전한 소제 (4대)|소제]]와 그 형제들은 사실 [[전한 혜제|혜제]]의 아들들이 아니라며 폐위하고자 했는데, 유흥거는 여씨들을 죽이는 데 공이 적다며 자청하여 [[하후영]]과 함께 [[전한 소제 (4대)|소제]]의 처리를 맡아, 궁궐에 들어가 소제를 폐위하고 소부에 안치했다. 이후 [[유택]] 등 대신들의 반대로 유양은 황제가 되지 못하고 [[대왕 (대나라)|대왕]] [[전한 문제|유항]]이 황제가 되었다.<ref name="s52"/><ref name="s9">위와 같음, 권9 여태후본기{{위키문헌|:zh:史記/卷009|사기 권9 여태후본기제9}}</ref>
 
문제 2년(기원전 178년), 문제는 원래 유장과 유흥거의 공이 크다 하여 조나라와 양나라의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이들이 유양을 황제로 세우려 한 것을 알자 공적을 폄하해 제나라를 갈라내어 만든 [[성양군|성양나라]]와 [[제북군|제북나라]]의 왕으로 삼았다. 제북왕은 불만을 품었고, 문제 3년(기원전 177년)에 [[흉노]]가 대대적으로 쳐들어와 한나라에서 대군을 내어 [[관영 (전한)|관영]]에게 맡겨 치게 하고 문제도 친히 [[태원군|태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듣자 반란을 일으켜 형양을 공격하려 했다. 문제는 흉노를 치기 위한 군대를 파하고 장안으로 돌아왔으며, [[시무]]를 장군으로대장군으로 삼아 형양에제북왕을 주둔하게치게 하고 제북왕을[[증하]]를 치게형양에 했다주둔시켰다. 제북왕은 패해 사로잡히자 자결했고, 제북나라는 폐해져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되었다.<ref name="s52"/><ref name="s10">위와 같음, 권10 문제본기제10{{위키문헌|:zh:史記/卷010|사기 권10 문제본기제10}}</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