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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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무 (후한)|건무]] 2년(26년), [[후한]]의 [[사도 (관직)|대사도]] [[등우]]의 부장 풍음(馮愔)이 반란을 일으켜 천수로 왔는데 외효는 이를 고평(高平)에서 물리쳤다. 등우는 보답으로 외효에게 부절을 주어 서주대장군에 임명하였고, [[양주 (간쑤 성)|양주]]·[[삭방자사부|삭방]]을 위임하였다. 장안을 점령하고 있던 적미군이 서쪽으로 나아가니, 외효는 부장 양광을 보내 이를 물리쳤다.
 
건무 3년(27년), 외효는 광무제에게 서간을 보냈다. 광무제는 외효를 [[자 (이름)|자]]로 부르고, 대등한 나라의 군주와 대면하는 예의를 갖추는 등 파격적으로 대우하였다. 같은해에 공손술의 지원을 받은 [[여유 (呂鮪성가)|여유]]가 삼보를 공격하니, 외효는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풍이 (후한)|풍이]]와 함께 협력하여 이를 물리쳤다. 또 공손술이 자신에게 [[사공 (관직)|대사공]] 겸 부안왕(扶安王)의 인수를 보내니, 외효는 그 사자를 베고 공손술을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 독립 ===
그러나 광무제가 공손술 공략에 외효를 부르니, 외효는 소극적으로 임하였다. 그외 본심은 천하 통일이 아니라 광무제와 공손술을 양립시킨 후, 자신이 실익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광무제 또한 이를 알아채고 점차 외효를 냉대하였고, 군신의 예로 격을 낮추었다. 외효는 자신과 친밀한 [[내흡]]·[[마원 (후한)|마원]]의 종용으로 아들 외순(隗恂)을 광무제에게 인질로 보냈으나, 심복 [[왕원 (王元후한)|왕원]]의 권유로 점차 자립의 의지를 키워나갔다.
 
건무 6년(30년), 공손술이 [[남군 (중국)|남군]]으로 진격하였다. 광무제는 외효에게 공손술의 본거지인 [[촉군|촉]] 공략을 명하였으나, 외효는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며 거절하였다. 결국 광무제는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 [[경감 (사람)|경감]] 등 7명을 촉 공략에 동원하였고, 외효의 본거지인 [[농서군|농서]]를 경유하게 하였다. 그러나 외효는 이것마저 거절하였고, 결국 광무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처음에 외효는 경감 등을 물리치는 등 선전하였으나, 부장 왕원·행순(行巡)의 삼보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외효는 곧 광무제와 화친하려 하였으나, 이마저도 결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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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
건무 9년(33년) 여름, 병으로 몸져 누웠고, 건량으로 허기를 달래며 지내다가 홧병으로 죽었다. [[왕원 (후한)|왕원]] 등은 외효의 아들 외순(隗純)을 옹립하고 계속 싸웠으나, 이듬해에 내흡에게 토벌되어 외순은 후한에 항복하고 왕원은 공손술에게 달아났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