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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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가을, 경시제가 주공후 이보와 익주자사 장충에게 군대를 주어 익주로 보냈다. 공손술은 자립할 뜻을 품고 아우 [[공손회]]에게 이들을 치게 하니 이보와 장충은 패주했다. 이로 인해 익주에서 공손술은 위세를 떨쳤고, 공조 이웅의 주장을 받아들여 촉나라 왕을 선포하고 서울은 (자신이 도강졸정 시절절 사용한 치소 임공이 아닌) 성도에 두었다. 이웅은 더 나아가 황제가 되어 천하를 손에 넣을 것을 권했는데, 공손술은 누군가 “팔사자손, 십이위기(八厶子孫, 十二爲期)”라고 외치는 꿈을 꾸었고 아내와 상의했다. “비록 고귀해지더라도 짧게라면, 어떨까요?” (팔사자손은 공손(公孫)의 파자다. 공손술이 황제가 된다면 12년뿐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아내는 답했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가하다는데, 하물며 12년이라니요!”
 
이에 25년 4월, 천자가 되어 국호는 [[성가 (成家후한)|성가]]라 하고, 흰색을 숭상했다. 연호는 용흥으로 정했다. 이웅을 대사도로, 아우 광을 대사마로, 회를 대사공으로 임명했다. 익주를 사례교위로 고치고, 촉군은 성도윤이라 했다. (사례교위와 윤은 모두 수도권 지역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남쪽 [[월수군]]의 [[임귀]]가 신나라의 대윤을 죽이고 와 투항했고, 이웅의 전략에 따라 북쪽 경계를 한중군 남정현으로 삼아 장군 후단에게 지키게 하고, 장군 임만을 강주로 보내 동쪽 경계는 한관(扞關)을 의지해 지키게 했다. 이렇게 모든 익주를 성나라의 영토로 삼았다.
 
=== 성-후한 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