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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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시대'''(後三國時代, [[892년]] ~ [[936년]])는 [[통일신라 시대]]에 지방의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각지에서 군웅<ref>[[궁예]], [[양길]], [[견훤]] 등</ref>이 할거(割據)하던 시대이다. [[892년]], [[신라]]의 [[비장]] [[견훤]]이 서남부의 [[무진주]]를 점령 후 개국공을 칭한 후부터 [[936년]] [[고려]]의 [[고려 태조|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킬 때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후백제의 견훤이 처음 왕을 선포한 [[900년]]을 시점으로 하기도 한다. 앞서 [[신라]], [[고구려]], [[백제]]가 대립하던 시기를 [[삼국 시대]]라고 칭하고 있으므로 그때와 구분하기 위해 이 시기를 후삼국이라 부른다.
 
9세기에서 10세기에 이르는 2세기는 골품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라]]가 붕괴되고, 그 속에서 [[호족#신라의_호족|호족]] 출신인 [[고려 태조|왕건]]이 나타나 [[고려]]를 세웠으며, 그 고려가 점차 봉건적인 귀족 국가로 확립되는 시기였다. 동시에 중국에서도 [[당나라]]가 망하고 5대(五代)라는 혼란기가 [[송나라]]에 의해 수습·통일되면서 한 문화가 복구되어 가는 시기이며, 한편으로는 북방 민족의 재등장이 촉진되고 있어 그 세력이 압력이 남방에 미치던 때였다. 다시 말하면 성당 문화(盛唐文化)가 밀려들어 [[통일신라]]의 문화가 극성기에 달했던 8세기를 끝으로, 신라는 당의 쇠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지방의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결국 붕괴되었으며, 후삼국이라는 과도기를 거쳐 10세기에 이르러 고려 왕조로 재정비되어 갔던 것이다. 특히 이 시기는 중국의 간섭이 없는 독자적인 ‘좌절과 흥기’의 반복으로써 고대 국가가 붕괴되는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 되는 때였으며, 외부 도전과 압력에서가 아니라 내부적인 승화 과정이 촉진되었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