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카 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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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은 1761년 [[무라토]]에서 코르시카의 전통적인 상징인 [[무어인들의 머리]]가 새겨진 고유의 화폐를 주조했다.
 
파올리의 독립, 민주주의, 자유주의 같은 사상들은 [[장자크 루소]], [[볼테르]], [[레날]], [[가브리엘 봉노 드 마블리|마블리]] 같은 철학자들에게서 지지를 얻었다.<ref>프랭크 매클린 <나폴레옹> 교양인 2016년 p20~21</ref> 1766년에 출판된 [[제임스 보스웰]]의 《[[:en:An Account of Corsica|An Account of Corsica]]》는 유럽 전체에 파올리를 유명하게 하였다. [[국가승인]]은 [[튀니스 베이리크국]]까지 확대되었다.
 
== 프랑스 침공 ==
{{본문|프랑스의 코르시카 정복}}1756년 프랑스는 코르시카를 침공했으나 7년 전쟁이 발발하자 철수하였다. 7년 전쟁 직후 1764년 다시 군대를 투입했으며 1768년에 제노바가 동맹국인공식적으로 프랑스에 코르시카의 통치권을 매각하였다.<ref>[네이버 지식백과] 코르시카섬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ref> 이에 반발한 코르시카인들은 파올리를 중심으로 하여 섬에 진군한 프랑스 군과 전쟁을 벌였다. 1969년 5월 8일 퐁트노보 전투에서 패배한후 파올리가 영국으로 망명하며 코르시카의 독립은 실패하고 만다.<ref>프랭크 매클린 <나폴레옹> 교양인 2016년 p22</ref>
 
코르시카 독립전쟁 당시 나폴레옹의 양친 참여하였으나 파올리가 망명할때 따라가지 않고 잔류하였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코르시카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코르시카에 잔류한 부친 카를로는 프랑스 측으로 전향하여 귀족의 지위를 얻었다.<ref>프랭크 매클린 <나폴레옹> 교양인 2016년 p26</ref>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파올리가 코르시카로 돌아와서 다시 독립투쟁을 벌였다. 이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도 합류하였으나 갈등으로 인해 1792년에 결별하였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