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아시안 게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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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회부터 [[대한민국]], [[일본]], [[중국]] 3개국이 메달 순위 1위부터 3위를 독주하기 시작한다.
* [[국제 육상 경기 연맹]](IAAF)의 지시를 어기고 1978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한 육상 선수들은 모두 3개월 동안에 걸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 개회식 실황 중계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단이 입장하는 과정에서과정을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방송이 자막으로 화면을 막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수들의, 입장 모습을 볼 수 없도록 조치하여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리호준]] 사격 선수가 출전하였다.
* [[일본]]과 [[말레이시아]]의 남자 농구 경기의 부심으로 지명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라복만 부심이 대한민국의 이재덕 주심과 함께 심판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경기를 보이콧하였고, 결국 라복만 부심은 태국 출신 부심으로 교체되었다.
* 대회 마지막 날에 열린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연장 포함 12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0-0 무승부를 기록하여 공동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경기는 [[분단국가]]가 된 이후 최초의 남북 축구 대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