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클레멘스 1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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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조상제사 거부라는 항목은 조선말기 집권세력에 의한 천주교 박해의 주요 이유로 십분활용되었다.<ref name=":3" /> 1791년 [[신해박해]], 1801년 신유박해,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사건으로 선교사와 천주교도 수만명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 말년선교와 구제 ===
클레멘스 11세는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독일]] 북부와 [[필리핀]]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또한 빈민 구제 사업에도 열성적이었다. 클레멘스 11세는 언제나 학자다운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바티칸 도서관]]의 장서를 늘이고 [[로마]]의 문화재 보존에도 힘썼으며 [[나자렛의 요셉|성 요셉]]에 대한 신심이 돈독하여 [[성무일도]]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