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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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하고 1908년 졸업하여 구한말 [[대한제국 농상공부|농상공부]] 임업권농모범장([[수원시|수원]] 소재)에 발령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강등·감봉을 당하고, 조선 식물을 연구하던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의 조교로 취업했다. 정태현은 나카이와 함께 [[울릉도]] 탐사를 수행했고, 이들의 탐사 내용은 [[조선총독부]]에서 1918년 《울릉도 식물조사사》로 발행되었다. 그러나 이 탐사 과정에서 정태현은 나카이에게 거의 [[노예]]에 가까운 가혹한 처우를 받았다.
 
이후 [[임업시험장]]의 [[이시도야 쓰토무]]의 조교가 되었다. 조선 문화에 관심이 많던 이시도야는 나카이에 비해 보다 평등하고 호혜적으로 정태현을 대우했고, 《조선삼림수목감요》 공저자로 정태현의 이름을 올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시도야가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발령을 나가자나감에 끈이따라 떨어진재차 정태현은지위의 지위가변동을 추락했다. 이후겪자 조선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실학]]을 비롯한 조선학 연구를 하는 한편 [[조선박물연구회]]에 《조선식물향명집》(1937년)을 출간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독립 이후 [[전남대학교]],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학술원]] 회원, [[국민훈장]] 모란장, [[5·16 민족상]] 학예부문 본상 등을 서훈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