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미사 (베토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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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부터 5년간은 베토벤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청력은 완전히 잃었으며, 여러가지 가족 문제, 경제적 문제, 직업적 문제가 겹쳐 창작 활동이 더욱 더뎌졌다. [[1816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으나, [[1817년]] 힘을 다시 찾아 [[피아노 소나타 29번 (베토벤)]]을 쓰기 시작한다. 이 때 종교적 작품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고, [[1818년]] 첫 뼈대를 완성하고, 5년의 고된 작업 끝에 완성하였다.
 
장엄미사곡라고 번역되는 미사 솔렘니스(Missa solemnis)는 [[사제]] 외에 조제(助祭)와 부조제에부제에 의해 행해지는 성대한 미사를 가리키고 있다. 1818년 베토벤의 이해자이며 좋은 벗이기도 했던 루돌프 대공의 올뮈츠 대사교[[대주교]] 취임이 결정된 것은 1818년의 즉임식을[[성품성사|서품]]을 위해 쓴 것이 이 장엄미사곡이였다. 그러나 여전한 경제적 궁핍과 건강 상태의 악화, 그리고 친자식처럼 돌봐온 조카 카를의 후견 문제에 시달려, 예정대로의 작곡은 진척되지 않았다. 결국 1820년의 즉임식에는대주교 서품에는 시간에시간이 대지를맞지 못했고, 완성된 것은해는 1823년, 베토벤이 52세가 되던 해였다.
대공에게 헌정함에 있어 제1곡 키리에의[[자비송|키리에]](kyrie,자비송.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첫머리에 ‘마음으로부터-또다시 마음으로 가리라’ 라고 스스로 써 넣었다고 한다. 너무도 고뇌가 많은 인생을 걸어온 베토벤이 그 만년에 이르러 마음의 평화를 절실하게 기도한 종교적 고백이라고 할 만한 작품으로, 고금을 통한 종교 음악의 대표적인 명작의 하나이다.
 
[[1824년]] [[5월 7일]] 부분적으로 초연되었고, [[1830년]] [[6월 29일]]에서야 전체적으로 초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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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 ==
* 제1곡 Kyrie ([[키리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제2곡 Gloria (글로리아. 영광)
* 제3곡 Credo (크레도, 믿음을 고백함.)
* 제4곡 Sanctus ([[상투스]], 거룩하시다)
* 제5곡 Agnus Dei (아뉴스 데이. [[하느님의 어린 양|하느님의 어린 양)]]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