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안동 김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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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김선평]](金宣平)은 930년(고려 태조 13년) 고창군(高昌郡)에서 [[권행]](權幸)·장길(張吉)과 함께 후백제군을 격파하여 [[고려 태조]]를 도운 공으로 대광(大匡)에 임명되었고, 고창군이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ref>[http://db.history.go.kr/id/kr_057r_0010_0010_0150_0010 고려사 권57 지 권제11]</ref>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60명1,025명의 무과문무과 급제자 12명, [[왕비]] 3명, 부원군 3명, [[정승]] 15명, [[판서]] 35명, 대제학 6명, 종묘배향공신 6명을 배출했다. 대대로 벼슬을 하였기에 금관자(金貫子)로 일컫는다.
 
[[김극효]](金克孝)의 아들 [[김상용 (1561년)|김상용]](金尙容)·[[김상헌]](金尙憲) 형제가 인조 때 상신에 올랐다. [[김조순]]이 [[조선 순조|순조]]의 장인이 되면서, [[조선 순조|순조]] 비 [[순원왕후]], [[조선 헌종|헌종]] 비 [[효현왕후]], [[조선 철종|철종]] 비 [[철인왕후]]에 이르기까지 세도가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