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요 (전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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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유요는 어려서 고아가 되었기 때문에 유연이 양자로 삼아 길렀다. 유연이 한나라를 건국한 이후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유연 사후에는 [[유총]](劉總)을 대신하여 [[311년]] 낙양을 공략하는 작전에서 한군의 총사령관 급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낙양 함락 이후에 장안까지 진출하였으나 [[전량]](前凉)의 지원을 받은 서진 민제(愍帝)의 세력에게 장안을 빼앗겼다. 이후 주로 진양(晉陽 : 지금의 산시성 타이위안 시)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316년]]에 장안을 함락하여 민제를 사로잡았으며, 이후 관중(關中 : 지금의 산시성 중부 일대)을 평정하는데평정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유요의 군대는 관중 일대에서 사실상 군벌화 되었다군벌화되었다.
[[318년]] 유총이 죽고 [[유찬 (전조)|유찬]]이 뒤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유찬의 외척이었던 근준이 반란을 일으켜 유찬을 죽이고 평양의 유씨 일족을 몰살시켰다. 유요는 장안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석륵]](石勒)을 조공(趙公)으로 임명하여 평양의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석륵에게 패배한 이후 내분으로 살해되었고, 근준의 잔존세력은 평양성과 함께 유요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석륵은 분노하여 평양을 공격하였으며, 근준의 잔당은 평양을 버리고 유요에게 도망쳤다. 석륵은 평양 함락 이후에 유요와 화친을 제의하였으나 유요는 석륵의 사신을 처형하여 석륵과 유요는 적대 관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