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 (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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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황 4년(23년), 녹림군의 일당인 용릉병의 [[유인 (제무왕)|유인]]군에게 육양(淯陽)에서 패한 장우는 진무와 함께 달아나 [[왕읍 (신)|왕읍]]·[[왕심]]이 이끄는 주력부대와 합류하였다. 녹림군은 [[한 경시제|경시제]]를 추대하고 스스로 한나라([[현한]])라 일컫기에 이르렀다.
 
같은해 5월, 유인이 완(宛)을 침략하였다. 왕읍 등이 곤양(昆陽)을 먼저 치려 하니 장우는 유인을 먼저 물리칠 것을 주장하였으나, 왕읍 등은 듣지 않고 곤양을 계속 포위하였다. 또 곤양에서 농성하던 현한의 [[왕봉 (경시제경시)|왕봉]]과 [[왕상 (후한)|왕상]]이 투항하려 하였으나 왕읍은 받아들이지 않고 포위를 견고히 하였다. 장우는 전의를 잃은 적에게는 퇴로를 하나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간하였으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왕봉 등은 필사적으로 저항하였고, 그 사이에 완 또한 유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6월에는 [[후한 광무제|유수]]가 곤양을 빠져나가 원군을 데려왔고, 왕읍군은 크게 패하였다([[곤양 전투]]).
 
초(譙)로 달아난 장우와 진무는 신나라를 저버리고 한의 장군을 칭하였다. 장우는 한나라가 부흥하여야 한다고 [[패군]]의 관리와 민중을 설득하였으나, [[경시제]]에게 투항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