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3·1절 발포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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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과 ==
도립병원 검시 결과 희생자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총탄에 맞은 것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여 3월 10일부터 민관 총파업이 발생하였고 일부 경찰도 파업에 동참하였다. 파업에 참여한 경찰은 제주 경찰의 20%라고 한다. 경찰은 [[3월 15일]]부터 파업 관련자 검거에 나섰고 200명이 이틀 사이에 검거되었다. 검거자 중 66명의 경찰이 파면되었고 충원은 [[서북청년회]] 소속으로 충원되었다.<ref name="강준만 20"/> 이는 훗날 경찰로 충원된 [[서북청년회]]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과 [[5.10 총선거]]에 반대하는 [[남로당]]계열의 좌익세력들의 활동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4.3사건]]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다.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