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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년]] 걸복건귀는 원천(苑川)으로 천도하는 등 국내의 정비에 노력하였으나, [[412년]] [[걸복공부]](乞伏公府)에 의해 살해되었다. 아들 [[걸복치반]]이 서진의 왕위를 이었다.
 
'''걸복국인'''(乞伏國人, ? ~ [[388년]], 재위 : [[385년]] ~ [[388년]])은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서진 (오호십육국)|서진]](西秦)의 초대 군주이다. 묘호는 열조(烈祖), 시호는 선렬왕(宣烈王)이다.
 
== 생애 ==
걸복국인은 [[선비족]] [[걸복부]](乞伏部) 출신으로 농서(隴西) 지방에서 대대로 살아왔다. 그의 아버지 걸복사민(乞伏司繁)은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의 [[부견]](苻堅)에 의해 남선우(南單于)로 임명되었고, [[376년]]에 아버지가 죽자 걸복국인이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383년]]에 부견이 [[비수대전]]을 일으키자 걸복국인은 선봉장이 되어 종군하였는데 출정하기 직전 숙부인 걸복보퇴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부견은 걸복국인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였는데, 걸복보퇴는 걸복국인의 토벌군을 맞아들여 걸복국인을 수장으로 추대하였다. 부견이 비수에서 대패하자 걸복국인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385년]], 걸복국인은 대도독·대장군·대선우·영진하이주목(大都督, 大將軍, 大單于, 領秦河二州牧)을 자칭하고 [[건의 (서진)|건의]](建義)로 개원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때부터 서진이 건국된 것으로 본다. 용사성(勇士城)에 수도를 두고 12개 군을 설치하여 농서군 일대에서 할거하였다. 걸복국인은 농서 일대의 [[흉노]], [[강족]] 등과 대립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대하였다. [[387년]]에는 [[부등]](苻登)의 세력에 가담하여 원천왕(苑川王)에 책봉되었다. [[388년]] 6월에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
*《[[자치통감]](資治通鑑)》
*《[[진서]](晉書)》
 
{{전임후임
| 앞이름=전 대
| 뒤이름=후 대
| 전임자= [[걸복국인]](
| 직책 = [[서진 (오호십육국)|서진]] 황제
| 대수= 1
| 임기= [[385년]] ~ [[388년]]
| 후임자= [[걸복건귀]](乞伏乾歸)
}}
 
[[분류:서진 (오호십육국)]]
[[분류:오호십육국시대 사람]]
[[분류:412년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