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군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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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매번 독서할 때마다 아버지 곁에 가까이서 시중 들며, 반드시 눈을 딴데로 옮기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때때로 물으면 대략 그 대의를 말하였다 하니 이로부터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게 되었다.
[[1561년]](명종 16) 18세 때 왕손 하원군 이정의 배우자로 간택되어 길례를 올리고, 외명부 품계를 받았다. 부군을 섬기기를 공경으로 하셨으되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으며, 일을 대함에 경계하고,
[[1569년]](선조 2) 10월에 자녀는 3남 1녀를 두고, 자식을 출산한 후유증으로 이해 [[10월 19일]] [[도정궁]](都正宮)에서 향년 26세로 별세하였다. 임종할 때 맑은 정신으로 조용히 하원군과 부모님께 결별을 고하니 듣는 이들이 슬퍼하고,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날 [[조선 선조|선조]]는 [[광화문]]에 나아가 무과시험장에 있었는데 형수의 부음을 듣고 놀라고 슬퍼하신 나머지 막차에 들어가 대신들에게 명하여 무과시험을 마무리하라하고, 특별히 부의를 많이 내려 장례 소재지로 하여금 많은 장정을 징발하여 그 역사에 이바지하게 하고, [[1570년]](선조 3) 1월 임신일에 장지를 남양주 남쪽 노원리 수락산 남쪽 기슭 [[덕흥대원군]] 묘소 남쪽 백보 거리 언덕에 예장하였다.<ref>조선왕조실록, 남양군부인홍씨묘갈문</ref>
현재 묘소에 남양군부인홍씨 묘갈문이 남아 있으며, 묘소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 [[덕흥대원군묘]]에 포함되어 문화재 지정 및
==가족관계==
*아버지 : [[강녕군]] [[홍섬]](江寧君 洪暹, 1504년 - 15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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