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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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주 이전 ===
한산주가 있던 지역은 유사이래 마한의 북쪽지역이었다. 그 이북에는 [[낙랑국]]이 있었다.
=== 한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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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강진 ===
신라는 황해도지역을 영토화하면서 이를 방어하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북방으로의 진출을 꾀하고자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ref>평양특급시</ref>일대에 패강진을 설치했다. 이로서 신라는 살수(薩水)유역까지 가시권에 넣게 되었고 발해와는 평북일대를 중립지대로 두고 접했다.<ref>조이옥(2001)통일신라의 북방진출 연구</ref> 나중에 신라가 쇠퇴하면서 이 지역은 무주지(無主地)가 되어 황폐화 되었다가 후삼국시대에 고려의 영토가 되어 서경(西京)으로 승격되었다.
=== 한산주 이후 ===
신라말이 되자 군웅의 할거와 토착호족에 의한 지방자치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안성일대인 [[죽산군|죽주]]에서는 기훤(箕萱)의 세력이 웅거하고 있었고 패서일대에서는 [[박지윤]]과 [[유천궁]], [[고려 세조|용건]]등의 호족들이 군집하고 있었다. 특히 박지윤은 그 출신이 신라왕실의 후손임에도 고구려의 장군인 대모달(大模達)을 자칭하고 있을 만큼
983년 [[고려 성종]]2년에 12목이 설치되면서 옛 한산주에는 양주(楊州)·광주(廣州)·해주(海州)·황주(黃州)의 4주가 설치되었고 나중에 개경주변에는 경기도의 모태인 관내도(關內道),
== 소속 군현==
757년 경덕왕이 지명을 고쳤을 당시 한산주에는 1개 소경, 27개 군, 46개 현이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지리지〉에 전하는 한주 조에는 1개 소경 28개 군 49개 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헌덕왕 때 설치된 취성군 및 그 소속 현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산주 소속 군현의 옛 지명을 옛 백제지역임에도 대부분 고구려 시기의 지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래 표에서 특별한 표시가 없는 옛 지명은 모두 고구려의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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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양현]](穀壤縣)<br /> [[공암현]](孔巖縣)<br /> [[소성현]](邵城縣)
| 잉벌노현(仍伐奴縣)<br />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br /> 매소홀현(買召忽縣)
| 서울특별시 구로구<br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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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군|장구군]](獐口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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