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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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의 이름은 초평(初平) 2년([[191년]]) [[화웅]](華雄)이 손견에 의해 사망하자마자 [[손견]](孫堅)에게 강화를 요청하는 사자로 처음 등장한다(강화는 결렬되었다).
 
후에 손견이 낙양(洛陽)으로 들어오자, [[동탁]](董卓)의 사위 [[우보 (후한)|우보]](牛輔)를 따라 섬현(陝縣)에 남았다. [[원술]](袁術)에게 배반한 [[주준]](朱儁)이 형주(荊州)에서 군대를 이끌고 낙양을 공격했기 때문에, [[곽사]](郭汜)와 함께 기병을 이끌고 주준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이각은 진격하여 연주(兗州) 진류군진류(陳留) · 예주(預州) 영천군영천(潁川)의 모든 속현의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을 끌고 가, 그가 지나가는 곳에서 목숨을 부지한 자가 없었다고 한다.
 
소제(少帝)의 황후 당희(唐姬)는 소제가 [[이유 (삼국지)|이유]](李儒)에게 살해당한 후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가던 중 영천으로 쳐들어온 이각에게 잡혔고, 이각이 아내가 될 것을 권하자 이를 거절하여 이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