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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金旋, ? - [[207년]]?) 혹은 '''김선'''은 후한 말기의 무릉군정치가다. 사례 경조군 태수이며사람으로, [[금위]]의 아버지이다.아버지며, [[자 (이름)|자]]는 원기(元機)이다. 황문랑, 한양군 태수, 의랑, 중랑장을 역임했으며, [[209년]] 무릉군 태수로 있을 때 [[유비]]가 [[형주]] 남부를 공격해 오자 성문을 열지 않고 항전하였다. 이후 투항했다고 전하는데,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에게 항전하다가 의견이 다른 부하에게 피살됐다고 전한다.
==행적==
《[[삼국지]]》 선주전에 기록이 남아 있다. [[유비]]가 [[적벽 대전]]에서 이기고 표를 올려 [[유기 (후한)|유기]]를 형주자사로 삼고 형주 남쪽의 4군(장사, 무릉, 영릉, 계양)을 정벌하자, 당시 무릉태수로 있다가 유비에게 항복했다.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한 《삼보결록주》의 기록은 본전과 대치되는 부분이 있다. 그에 따르면, 황문랑, 한양태수, 의랑을 역임했다. 중랑장이 되고 무릉태수를 겸임했는데, [[건안]] 12년([[207년]]) [[유비]]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 《삼국지연의》에서의 김선 ==
《[[삼국지연의]]》에 의하면 무릉태수 김선은 유비에게 대항하여 항전하다가, 부하인 [[공지]](鞏志)에게 살해되었다고 나온다. 김선이 유비와 항쟁할 뜻을 비추자, 공지는 유비에게 항복할 것을 간언한다. 김선은 공지의 주장을 배신행위로 간주하여 모욕을 주고 방안에 가둔다. 공지는 김선에게 앙심을 품게되어 김선을 죽이고, 성문을 열어 유비에게 투항한다. 정사에는 공지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없다. 그러나 김선은 무릉이 유비에게 넘어간 이후에 역사 기록에서 사라져, 삼국지연의의 서술이 일정 부분 개연성이 있다.
 
[[분류:삼국지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