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부하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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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
 
부하린에 대한 사형선고는 해외 지식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스탈린]]과 친분이 있던 프랑스의 대문호인 [[로맹 롤랑]]은 부하린에게 사면을 내려줄 것을 스탈린에게 청원했다. 그러나 1938년 3월 15일 부하린은 처형되었고, 이는 [[나치 독일이독일]]이 [[오스트리아 병합|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사건 ([[안슐루스]])에 가려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부하린은 처형 직전에 스탈린에게 "코바(스탈린의 혁명활동시 별명), 왜 나의 죽음이 필요하지?"라는 편지를 보냈다. (부하린이 스탈린을 "코바"라고 부른 것은 둘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내와 아들에 대한 안전보장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부하린 사후 강제수용소에 보내졌고, 스탈린 사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부하린의 아내는 [[흐루쇼프]] 시절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출석하여 당시에는 문서로 남길 수 없어서 암기하도록 시킨 부하린의 유언을 말했다. 부하린은 1988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정치적 명망과 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