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당 드라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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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당 드라알은 [[파리 (도시)|파리]] 북방의 [[아라스]] 태생으로, 아라스의 아당, 또는 꼽추 아당이라고도 불렸으며, 음유시인으로서 알트와 백작 [[로벨 2세]] 밑에 근무했으며 백작과 함께 [[나폴리]]로 가서 거기서 [[카를로 1세|앙주 공(公) 샤를]]의 궁전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이 곳에서 만년을 보낸 뒤 사망했는데 53곡의 가요가 그의 이름으로 남았으며 3성부의 [[론도]] 등 다성 작곡에도 수완을 발휘하였으나 특히 중요한 작품으로는 단선율로 작곡된 목가극 <[[로방과 마리옹의 장난]]>(1828년경 나폴리에서 초연)일 것이다. 이는 기사와 양치기 딸의 로맨스에 양치기들의 장난을 곁들여 대화와 민요풍의 가요로 형성되며 후자가 자주 반복해서 노래된다. 이런 구성이 훗날 [[보드빌]](나아가서는 [[오페라 코미크 (양식)|오페라 코미크]]) 형태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역사상 주목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참조 자료 ==
* {{글로벌}}
{{생애|1240|1287|드라알, 아당}}
 
[[분류:중세 서양의 작곡가]]
[[분류:프랑스의 작곡가]]
[[분류:프랑스의 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