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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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희 (후한)|광희]](光熹) 원년([[189년]]), 대장군 [[하진]](何進)이 [[동탁]](董卓)을 끌어들여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노식은 [[정태]](鄭泰)와 더불어 이를 반대했으나 하진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결국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그 부하들은 일제히 궁궐을 공격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장양 (십상시)|장양]](張讓)이 하태후에게 하진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하고 태후와 황제, 진류왕을 데리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노식이 창을 쥔 채 태후를 이끌고 달아나던 [[단규]](段珪)를 거듭 노려보자, 단규는 마지못해 태후를 놔두고 도망쳤다.
순조롭게 정권을 잡은 동탁은, [[후한 소제 (13대)|소제]](少帝)를 폐하고 진류왕(陳留王: [[후한 헌제|헌제]]獻帝)을 세울 뜻을 내비쳤다. 노식이 면전에서 반대하자 동탁은 노식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당시 갓 등용되어 동탁의 신임을 받고 있던 [[채옹]](蔡邕)이 노식을 위해 간한 덕분에 벼슬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그쳤다. 이후 하북으로 달아났다가 [[원소 (삼국지)|원소]](袁紹)에게 등용되었다.군사로 [[192년]]임용되었고, 이듬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저작으로 《상서장구(尚書章句)》《삼례해고(三禮解詁)》가 있으며, 채옹, [[양표]](楊彪), 한설(韓說)과 함께 《한기(漢記)》를 공동으로 집필했다.
 
== 노식의 친족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