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북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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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년]] [[북위 (북조)|북위]]에서는 옥야진 백성의 거병이 있었다. 파육한발릉(破六韓抜陵)이 수령(首領)인 반란병들은 수비대장을 살해하였고, 이들의 움직임에 홀려 기타 여러 진들에도 전염되었다.([[육진의 난]])
결과적으로 이 반란자체는 [[530년]] 장군 이주영이 진압했으나, 그 후 [[북위 (북조)|북위]]에 대한 [[양 (남조)|양]]나라 군대의 침공이 있었고, 또한 국내는 정권을 장악한 이주씨 일파의 전횡이 일어나 북위가 동서로 분열하여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영태후는 효명제를 독살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육진의 난]]의 진압 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지방의 흉노족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 대신 1,000명을
[[분류: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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