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유민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Image:Yunogo2000.jpg|thumb|right|300px|엔닌(円仁,慈覚大師) 동상]]
자각대사 '''엔닌'''(仁, 794[[794년]] ~864 [[864년]])은 일본의 [[교토 시]] 인근 [[연력사엔랴쿠지]](延曆寺, 엔랴쿠지)의 승려로 [[9세기]] [[당나라]]와 당나라의 신라인의 생활을 잘 소개한 엔닌의 일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썼다.
 
== 생애 ==
엔닌은 [[794년]] 현재의 [[도치기 현]]의 미부(壬生) 가문에서 출생하여, 14세에 교토 근처의 히에이 산의 [[엔랴쿠지]]({{lang|ja|延曆寺, 연력사}})에 입적하여 출가하였다.
 
[[838년]] 일본 큐슈규슈(九州) [[하카타]]를 출발하여 9년간(838~847) 당나라에 머물면서 그 동안의 행적을 일기로 썼다.
 
그의 일기는 총 4권이 있으며, 당시의 당나라의 풍습과 관습, 문화 등 많은 사실적인 기록들이 들어가 있다. 특히 2권에서는 그는 [[신라방]]에서 많은 신세를 진 듯 그의 책에서“신라인 해상왕 [[장보고]]의 통치 아래 있던 중국 내 [[신라방]]이 자신에게 베풀어진 배려가 아니었으면, 돌아가기 힘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엔닌이 소속되었던 [[연력사엔랴쿠지]]에는 장보고 기념비를 비롯해 당시의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적산법화원적산 법화원]]에서 오랫동안 신세를 지었기 때문에 돌아와서 [[교토 시]] 북동부의 헤에이산[[히에이 산]](比叡山)에 연력사의엔랴쿠지의 별원으로 [[적산선원]](赤山禪院, 세키잔젠인)을 세웠다. (지금도 관광이 가능하다.)
 
시대는 달리하지만, 20세기 초 [[둔황]]의 유물을 탐구했던 근처의 사원인 [[서본원사]](니시혼간지)의 승려인 [[오타니 고즈이|오타니]]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된다. 오타니는 둔황의 유물을 일본으로 반출한, 둔황학의 몇 안되는 유물수집자들유물 수집자들 중의 하나이며, [[왕오천축국전]]을 집필한 [[혜초]]가 신라의 고승임을 알아내었다.
 
==관련항목==
17번째 줄:
* [[신라방]]
* [[입당구법순례행기]]
* [[적산법화원적산 법화원]]
* [[연력사엔랴쿠지]]
 
==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