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스턴 처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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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택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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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차 세계대전 ===
[[영국 보수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보수당과 자신이 맞지 않다는 구실로 [[자유당 (영국)|자유당]]으로 당적을 바꾸었다가 다시 [[보수당 (영국)|보수당]]에 입당하였다. 당시 보수당계 정치인들에게 처칠은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후 정계에서 퇴출되었지만 다시 정치에 복귀하였다. 처칠은 한때 [[나치 독일]]이 영국을 공습할 것을 염려해 과거 [[공군]]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정계에서 무시되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진짜 영국을 공격하여 처칠의 견해가 맞다는 것이 입증되자 영국정부는 그를 다시 해군장관에 임명하였다. 이 후 [[네빌 체임벌린]]이 외교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임함으로서 [[조지 6세]]의 승인으로 [[영국의 총리]]를 지냈다. 이 후 [[영국 공습을공습|영국 본토 항공전]]을 막아내고 연합국의 승리를 가져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처칠 시대에 지은 벙커는 현재도 영국 지하에 남아있다.
 
[[1943년]] [[11월 22일]] [[카이로]]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중국의 [[장제스]]와 함께 3국 수뇌 회담을 가졌다. 카이로 회담이 끝나자마자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처칠은 [[테헤란]]으로 장소를 옮겨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을 만났다. [[1943년]] [[11월 28일]], 미·영·소 3개국 정상회담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한국인이 완전한 독립을 얻기 전에 약 40년 간의 수습 기간(apprenticeship)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고,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은 이에 구두로 동의를 표하였다. <ref>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40년대편 1권 43쪽</ref>